“수시적성검사 강화, 운전 부적격자 걸러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일 03시 00분


‘해운대 17명 사상’ 교통사고 운전자는 뇌전증 환자
7월 정기적성검사서 통과돼… 병원 “약 복용 안하면 의식 잃을 수도”
운전자 “사고 기억안나”… 원인 가능성


지난달 31일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부산 해운대 교통사고의 가해 차량 운전자 김모 씨(53)가 뇌질환의 일종인 뇌전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뇌전증은 과거 간질로 불리던 질병이다.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거나 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 경찰은 김 씨의 질병이 사고의 원인일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1일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지난해 9월 울산의 한 병원에서 뇌전증 진단을 받았다. 경찰은 “병원 측에 확인한 결과 김 씨는 지난해 11월부터 매일 두 차례씩 뇌전증 치료약을 복용 중이었다”라고 밝혔다. 병원 측은 “김 씨의 경우 하루라도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을 수 있다”라는 소견을 경찰에 밝혔다. 사고 직후 김 씨는 “사고 순간이 기억나지 않고, 오늘(사고 발생일) 뇌질환 약을 먹지 않았다”라고 경찰에 진술했다.

김 씨는 10년 전부터 당뇨병도 앓았던 것으로 조사돼 사고 전 저혈당 쇼크를 일으켜 정신을 잃었을 우려도 제기된다. 경찰은 김 씨가 치료를 받고 있는 병원으로부터 관련 기록을 넘겨받아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하는 한편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김 씨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김 씨가 교통안전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할 수 있는 뇌질환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운전할 수 있었던 건 현행 운전면허 관리 체계의 허점 탓이다. 도로교통법상 뇌전증이나 정신질환이 있다고 해도 운전면허 신규 취득이나 갱신을 무조건 막을 수 없다. 다만 6개월 이상 입원해 치료한 전력이 있는 경우에 수시적성검사 대상자로 분류돼 운전적성판정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해당 의료기관이 지역 보건소에 통보하면 보건소는 경찰청 전산시스템에 정보를 입력하고 관련 정보는 해당 면허시험장으로 통보되는 방식이다.

하지만 김 씨처럼 입원하지 않은 채 통원치료를 하면서 약만 복용하는 경우는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운전면허 갱신은 물론 신규 취득도 가능하다. 물론 면허 갱신 때 정기적성검사를 받지만 시력 청력 등 간단한 신체능력을 테스트하는 수준이다. 운전자 자신이 질병 유무를 밝히지 않으면 정기적성검사에서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실제로 김 씨도 지난달 정기적성검사를 받았지만 아무 문제없이 통과했다.

수시적성검사 대상자로 분류돼 운전적성판정위원회가 열려도 ‘위험 운전자’를 모두 걸러내기는 쉽지 않다. 실제로 국내 수시적성검사의 면허 유지 판정 비율은 교통 선진국에 비해 매우 높다. 최근 5년간 면허 유지 판정이 내려진 비율은 평균 77.2%. 독일의 경우 이 비율이 30∼40%에 그치고 있다. 운전적성판정위원회는 도로교통공단 관계자, 교통 전문가, 의사 등으로 구성되며 대상 질환은 뇌전증 외에 치매, 조현병(정신분열), 마약 장애(담배 제외), 알코올 장애 등이다.

김인석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부장은 “전문가 협의를 통해 수시적성검사 대상 질환의 확대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라며 “단계적으로 수시적성검사를 요청할 수 있는 주체도 늘리고 판정위원회에 다양한 심사위원을 추가해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부산=강성명 smkang@donga.com / 정성택 기자
#해운대#뇌전증#면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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