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사고’ 계기 조기치료 목소리
月1회 의식 잃는 중증환자 2만명… 비싼 수술비-사회적 편견에 방치
전문가 “80%는 약물로 치료 가능”
“불안합니다. 앞으로 뇌전증에 대한 세상의 시선이 얼마나 가혹해질지…. 내 미래도 어두워지는 것 같아 두려워요.”
뇌전증(腦電症·간질)을 앓고 있다는 한 20대가 올린 글이 2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됐다. 지난달 31일 24명의 사상자를 낸 ‘해운대 교통사고’ 운전자 김모 씨(53)가 뇌전증을 앓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뇌전증 환자를 색안경을 쓰고 볼까 우려해 쓴 글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2일 국민건강보험공단과 함께 2005∼2015년 뇌전증으로 진료받은 환자를 분석한 결과 2005년 13만9012명에서 지난해 13만4820명으로 소폭 하락했다. 큰 증가나 감소 없이 연평균 13만 명가량이 뇌전증으로 치료받았다.
하지만 의료계는 국내 뇌전증 환자가 실제로는 4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사회적 편견으로 병원을 찾지 않는 숨은 환자가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뇌전증 유병률은 0.5∼1%. 100명 중 1명 정도가 앓는 비교적 흔한 질병이다. 홍승봉 대한뇌전증학회장은 “발작이 조절되지 않아 한 달에 1회 이상 의식을 잃는 중증 뇌전증 환자는 2만 명에 달한다”라면서 “수술 비용(1000만∼3000만 원)이 많이 드는 데다 뇌중풍, 파킨슨병과 달리 정부 지원도 부족하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치매나 심장, 뇌혈관, 희귀 난치병 등 다른 중증 질환은 건강보험 진료비의 5%만 본인 부담이지만 뇌전증은 30∼40%를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더구나 1990년대까지 10곳이던 뇌전증수술센터는 유지비를 감당하지 못해 현재 6곳으로 줄었다. 수술 대기하는 데 만 1년이 걸린다. 이상암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는 “뇌전증은 뇌의 일부가 뇌중풍 등의 원인으로 손상되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질환”이라며 “환자 5명 중 4명은 약물 치료로 조절이 가능하고 수술을 받으면 80∼90%는 경련을 완전히 조절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한편 부산 해운대경찰서는 2일 “뇌전증 등 가해자의 질환을 사고의 직접 원인으로 아직 단정할 수 없다”라면서 김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또 1일 전북 익산시 부송동의 한 도로에서도 당뇨병 환자가 운전 중 의식을 잃고 중앙분리대를 들이받는 사고가 일어났다. 익산경찰서는 “운전 중 저혈당으로 인한 쇼크가 와서 서서히 의식을 잃고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사고가 난 것 같다”라고 말했다.
:: 뇌전증 ::
비정상적인 신경세포로부터 일시적으로 전류가 형성돼 대뇌의 기능 이상이 나타나는 병. 뇌중풍, 뇌종양, 뇌감염, 두부외상, 뇌의 퇴행성 질환 등이 원인이다. 부분 발작은 현기증, 공포감을 느끼고 이상한 소리가 들리거나 섬광이 보이고 이후 팔, 얼굴, 다리 등이 떨리거나 저리며, 입맛을 다시고 손발을 떠는 반복적인 행동을 한다. 전신 발작의 경우 완전히 의식을 잃고 쓰러져 기억을 전혀 하지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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