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과학이 보이는 CSI]할아버지 인삼밭 누가 털었나? 흙은 알고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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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할아버지는 인삼을 키워 아버지, 고모, 작은아버지를 대학까지 보냈다고 하시며 인삼 밭을 정성껏 가꾸고 계신다. 그런데 지난 일요일 아침 늦잠을 자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전화를 하셔서 2010년에 심어 6년 동안 정성껏 키운 인삼이 밤사이 없어졌다고 분통을 터뜨리셨다.

할아버지는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A 할아버지, B 할머니, C 할아버지가 의심이 가는데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한숨을 쉬시며 전화를 끊으셨다. 아버지와 내가 할아버지 댁에 도착하니 할아버지 밭에서 캔 인삼과 A 할아버지, B 할머니, C 할아버지 집에서 가지고 온 인삼들이 나란히 있었다. 인삼을 보니 묻어 있는 흙의 색이 서로 달라 보였다. 갑자기 며칠 전 읽은 셜록 홈스의 사건이 떠올랐다. 범인으로 오해받던 조지 에달지의 옷에 묻은 흙과 죽은 가축에 묻은 흙이 다른 종류라는 걸 밝혀 에달지의 무죄를 입증한 이야기였다. 나는 마치 홈스가 된 것처럼 인삼에 묻어 있는 흙이 어떻게 다른지를 알기 위해 흙에 대해 책을 찾아보고 인터넷 검색을 하며 조사를 시작했다

흙은 바위가 비, 바람 등의 영향으로 오랜 시간 동안 부서져서 돌, 자갈, 모래를 거쳐 형성되는데, 주위 환경에 영향을 받아 부스러지고 동식물에서 유래되는 유기물이 섞여 있는 상태를 말한다. 흙은 주로 고체이고 액체와 기체가 섞여 있다. 고체는 무기물과 유기물이며, 흙 속의 물이 액체이고, 흙 속에 있는 공기가 기체인데 이들의 비율은 일반적으로 무기물이 약 45%, 유기물이 5%, 공기 25%, 수분 25%로 구성돼 있다.

○ 흙의 성분은 정말 다를까?

정보를 찾던 나는 기후, 생물, 지형, 시간 등에 따라 특징이 서로 다른 토양이 만들어진다는 내용을 발견한 순간 쾌재를 불렀다. 조건에 따라 흙의 구성이 달라진다면 할아버지댁 근처의 흙도 채취 장소에 따라 다를 것이니 할아버지 인삼 흙과 같은 흙을 찾는 실험을 시작했다.

네 가지 흙의 형태, 크기, 습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관찰하고, 흙 일부를 깨끗한 백지 위에 놓고 색상을 관찰했다. 이어 현미경까지 사용해 흙을 관찰해 봤지만 아쉽게도 네 가지 흙에서 특별한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고민 끝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토양 전문가 김 박사님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김 박사님은 내가 가져간 흙에서 유기물과 철 성분을 제거한 다음 점토 성분 물질을 슬라이드글라스에 얇게 편 다음 커버글라스로 덮어 편광현미경에 놓고 보여 주셨다. 편광현미경은 흙의 무기물의 형태 및 암석의 구성 광물을 감별할 수 있어 과학수사 분야에서 아주 중요하게 쓰인다. 그런데 네 가지 흙은 모두 편광현미경에서도 비슷하게 보였다.

내가 실망한 표정을 보이자 박사님은 정색시약에 의해 색이 변화하는 걸 보자고 하셨다. 그래서 흙을 구성하고 있는 성분에 따라 흙이 알칼리성인지 산성인지를 보기 위해 흙에서 유기물을 분해하고, 철을 제거한 다음 여러 정색시약을 가해 변하는 색을 관찰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네 가지 흙 모두 중성으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박사님께서는 우리나라는 지질대의 형성이 비슷해서 같은 지역의 흙일 경우 구별이 어렵다고 말했다. 또 이렇게 구별이 어려울 경우 흙 성분에서 소량 존재하는 유기물을 채취해 분석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할아버지 인삼을 찾지 못해 실망했지만 내가 밟고 다니는 흙이 이렇게 사건에 긴요하게 쓰인다는 걸 알고 앞으로는 흙을 소중하게 다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범죄 수사에 활용되는 토양

과학수사에서는 용의자의 의류, 신발, 자동차 타이어 등에 묻은 흙과 사건 현장의 토양을 비교 분석해 용의자와 사건 현장의 관련성을 증명해 사건을 해결한다. 또한 변사사건에서 변사자의 의류에 묻은 흙과 사건 현장의 토양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변사자와 사건 현장의 관계를 증명할 수 있다.

흙은 농작물 절도 사건에서 절취한 물건과 절취 장소 토양의 관련성, 교통사고에서 용의 차량에 묻은 흙과 피해자의 의류 등에서 채취한 흙의 연관성을 증명하는 증거물로 이용된다. 토양이 이렇게 수사에 활용되는 건 토양의 구성 성분이 다양하기 때문. 일본의 경우 전국의 토양을 분석하여 지역적으로 토양의 특성과 차이를 데이터베이스화해 활용하고 있다. 영국은 해변에서 살인사건이 많이 발생하는 데 착안해 해변의 토양 및 퇴적물의 입자 분포도를 조사하고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범죄 수사에 활용한다.

○ 토양이 활용된 사건

경찰서에 택시 강도 사건이 접수됐다. 택시 운전사는 여자 승객을 태우고 가면서 교차로에서 신호대기를 하고 있던 중 갑지기 괴한이 차 문을 열고 들어와 여성을 칼로 찌른 후 뒤따라온 승용차에 옮겨 태우고 도주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택시를 조사했는데 택시 안에는 현금과 신용카드가 그대로 있어 이는 금품을 노린 강도라는 택시 운전사의 진술과 일치하지 않았다. 더욱이 괴한이 여자 승객만을 태우고 도주했다는 점도 이상해 택시 운전사의 의복 이상 여부와 택시를 조사했다. 차량 외부에 흙탕물이 묻어 있었고 택시 운전석 깔판에 흙이 묻어 있었으며, 택시 운전사의 신발에도 흙이 묻어 있어 시내만 운행했다는 운전사의 진술과 일치하지 않았다.

그 무렵, 하천 변에서 신원 불상의 여성 변시체가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접수돼 현장으로 출동했다. 경찰은 물웅덩이에 있는 흙을 대조 토양으로 채취하고 아울러 차량 하부 및 운전석 깔판에 있는 흙, 운전사 신발에 묻은 흙 등을 채취하여 국과수에 감정 의뢰하였다. 그 결과 운전석 깔판에 있던 흙과 운전사 신발 바닥에 묻은 토양은 모두 변시체가 발견된 지점의 토양과 유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택시 운전사가 여성을 살해하였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정희선 충남대 분석과학기술대학원 원장·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
#과학수사#범죄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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