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명인열전]“현재에 만족하면 스트레스가 훌훌… 조금 모자란 듯 사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8일 03시 00분


<54> 최고령 현역의사 강재균 원장

현역 최고령 의사인 강재균 원장은 꾸준한 자기 관리와 자족하는 생활 자세로 아흔을 넘기고도 환자를 진료한다.그는 후배 의사들에게 책을 손에서 놓지 말 것과 환자를 가족처럼 대할 것을 주문했다. 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현역 최고령 의사인 강재균 원장은 꾸준한 자기 관리와 자족하는 생활 자세로 아흔을 넘기고도 환자를 진료한다.그는 후배 의사들에게 책을 손에서 놓지 말 것과 환자를 가족처럼 대할 것을 주문했다. 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1925년생, 1951년 의대 졸업, 의사 시작 65년, 전주 개업 55년째….

전북 전주시 완산구 강이비인후과 강재균 원장(91·의학박사)을 설명하는 표현이다. 그는 전북에서 활동하는 현역의사 중 최고령이다. 국내 전문의 중에서도 여전히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최고령 개업의로 추정된다. 이 병원은 의사뿐 아니라 환자도 간호사도 나이가 많다. 30∼40년째 다니는 환자는 흔하다. 할아버지 환자가 손자를 데리고 온다. 간호사도 손자가 있는 할머니다. 의료장비도 인테리어도 새것은 없다. 모든 것에 세월이 짙게 배어 있다. 그 속에 묘한 편안함이 있다. 집안 할아버지에게 온 것처럼 환자의 마음까지 달래주는 분위기다.

○ 최고령 현역 개업 전문의

의료계 격언에 “의사의 ‘말처럼’ 살면 장수하지만 ‘의사처럼’ 살면 장수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의사들이 환자들에게는 ‘과음, 과식하지 마라’ ‘운동해라’ ‘스트레스 받지 마라’고 온갖 주문을 하면서도 정작 의사 본인은 잘 실천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강 원장의 생활을 보면 ‘의사처럼’ 살아도 될 것 같은 믿음이 생긴다. 꾸준한 자기 관리와 안분자족(安分自足)하는 생활자세가 몸에 배어 있다.

그에게는 자동차가 없다. 차는 30여 년 전에 처분했다. 운전하면 스트레스가 필연적이기 때문에 아예 운전대를 잡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택에서 병원까지 30분 거리를 매일 걸어 다닌다. 웬만하면 전주시내에서는 아예 차를 타지 않고 걸어 다닌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도 자리에 앉지 않는다. 서서 가면 운동도 되고 균형감각 유지에도 도움이 된다.

“여전히 아침에 일어나 수염을 깎고, 거울을 보며 넥타이를 매는 것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느낍니다. 집에 있으면 답답하니 병원에 나와 책도 읽고 친구도 만나고 그러는 거지요.”

강 원장은 오전 9시경 병원에 나와 하루 15명 안팎의 환자를 본다. 대부분 노인성 이명환자나 어지럼증, 외이도염 환자들이다. 1970, 80년대 한창때는 입원실이 10개나 되고 하루 100여 명의 환자를 봤다. “오랜 세월을 함께해 가족 같은 환자들과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근심 걱정이 사라집니다.”

오후 6시경 걸어서 퇴근한 뒤 역기와 아령 등으로 30분 정도 근육운동을 한다. 샤워를 한 뒤 저녁을 먹으며 맥주 한 캔을 곁들인다. 담배는 평생 피운 적이 없다. 수십 년째 변치 않는 생활 패턴이다. 주말이면 산에 오른다. 강 원장은 수년 전만 해도 지리산 천왕봉(해발 1915m)을 어려움 없이 올랐다. 지금은 전주 근교의 산을 2, 3시간 정도 걷는다.

환자가 없을 때는 책을 본다. 안경을 쓰지 않고도 신문과 책을 볼 정도로 시력이 좋다. 어려서부터 배운 일본어가 편해 일본에서 나온 니체 칸트 등 독일 철학자들의 책을 많이 읽는다. 일본의 시사잡지 문예춘추는 35년 전부터 정기구독하고 있다. 일간지 2개도 정독한다. 함께 일한 지 30년이 다 돼가는 간호사는 “원장님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정한 시간에 걸어서 출퇴근하고 환자 보는 시간 외에는 책을 손에서 놓는 법이 없다”고 말했다.

○꾸준한 자기관리와 자족하는 삶

요즘 하나둘 세상을 떠나는 친구들을 보면서 그 역시 부쩍 외로움을 많이 탄다. 산에 같이 다니던 동료들이 세상을 떠나거나 몸이 좋지 않아 갈수록 산행 멤버가 줄어드는 것이 무엇보다 안타깝다.

김제 출신인 강 원장은 일제강점기 고창고보를 거쳐 1944년 경성제대에 입학해 1951년 서울대 의과대학(5회)을 졸업했다. 의대 동기생 가운데 살아 있는 사람도 손에 꼽히고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개업의는 유일하다. 6·25전쟁 때 군의관으로 참전해 부산과 전방에서 6년을 근무했다. 군의관 시절 전방 구호소가 있던 산악지대를 매일 오르내렸던 게 건강에 큰 자산이 됐다고 믿는다. 소령 제대 후 부산대에서 이비인후과 수련의 과정을 밟았고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환자에게 약 조제를 최소화하고 주사는 거의 놓지 않는다. 현대인 건강의 최대 적으로 스트레스와 운동 부족, 과다한 약 복용을 꼽는다. “감기 들면 왜 콧물이 나오겠어요. 바이러스 못 들어가게 하려는 겁니다. 나이 들면 혈압이 약간 오르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지요. 너무 약에 의존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특히 욕심을 줄이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현재에 만족하고 사는 것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비법 중 하나다. 조금 모자란 듯 사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아내(86)와 단둘이 오순도순 사는 것도 나름의 행복이다. 친구인 황인담 전북대 의대 초대학장(91)은 “강 원장은 항상 주변에 베풀고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며 “선한 마음씨와 평상심을 유지하는 생활 자세가 장수의 비결일 것”이라고 말한다.

강 원장은 후배 의사들에게 책을 손에서 놓지 말 것과 환자를 진심으로 대할 것을 주문했다. 환자를 가족처럼 대하며 말 한마디 따뜻하게 건네는 것이 백약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강 원장은 “간혹 의사들의 잘못된 말 한마디가 환자들의 병을 더 키우는 경우도 있다”며 “환자들이 두려움 없이 질환을 이겨낼 수 있도록 마음까지 어루만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몸 상태가 60, 70대 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가족이나 주위에서 그만 쉬라고 하지만 아직 손이 떨리지 않고 무엇보다 사람은 일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건강이 허락하는 한 환자를 볼 생각입니다.”
 
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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