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 옮길 직장에 대한 중요한 정보는 누가 내게 줄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실험을 한 학자가 있다. 현재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이면서 가장 인용이 많이 된 사회학 논문 중 하나로 손꼽히는 ‘약한 연대의 강점(The Strength of Weak Ties)’의 저자 마크 그래노베터이다. 1973년 ‘미국 사회학 저널’에 실린 이 논문은 얼마나 자주 만나는가를 기준으로 ‘자주’(적어도 1주일에 두 번은 보는 관계), ‘어쩌다’(1년에 한 번 초과 1주일에 두 번 미만 보는 관계), ‘거의’(1년에 한 번 이하로 보는 관계)로 나눈 뒤, 새로운 직장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경로가 어느 쪽인지를 보았다. 결과는 ‘자주’로부터 얻는 경우가 16.7%였으며, ‘어쩌다’가 55.6%, ‘거의’가 27.8%였다. 논문 제목이 알려주듯, 자주 얼굴을 보지 못하는 약한 연대로부터 중요한 정보를 얻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이 논문의 중요한 발견 중 하나이다.
생각해 보자. 직장에서 매일 만나는 동료의 경우 그들이 알고 있거나 생각해 본 아이디어는 나도 알고 있거나 생각해 봤을 가능성이 높다. 유사한 환경에서 비슷한 정보를 받아 보고 회의 등을 통해 공유하기 때문이다. 회사 동료들끼리 브레인스토밍을 해도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설사 내 동료가 나는 모르는, 하지만 내게 중요할 수 있는 정보를 가졌을 때 그는 나와 공유하지 않을 가능성이 약한 연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 내가 잠재적 경쟁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사람들과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들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은 정보가 내게는 신선하고 좋은 정보일 가능성이 있다. 출판된 지 40년이 지난 이 논문은 약한 연대와의 소통이 활발해진 소셜미디어 시대에 여전히 많이 읽히고 있다.
이 연구는 직장인들에게 중요한 네트워킹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네트워킹이란 무엇일까. 직장 선후배들과 1주일에도 몇 번씩 술잔을 기울이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이번 기회에 다시 생각해 보자. 네트워킹이란 약한 연대에 있는 사람들과 1년에 단 한 번이라도 차 한 잔을 두고 서로 덕담만 나누는 표피적인 대화 말고, 정보와 생각을 나누며 의미 있는 대화를 하는 것이다. 좋은 정보나 아이디어가 네트워킹을 통해 내게 올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 보면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가 ‘설득의 심리학’에서 말한 상호성의 법칙을 떠올리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좋은 정보나 아이디어를 주기를 바란다면 내게 그런 정보나 아이디어가 있을 때 먼저 상대방에게 주라는 것이다. 투자가 있어야 수익을 거둘 수 있듯, 관계에서도 먼저 신뢰를 보여주고 도움을 주면 시간이 지나서라도 직간접적으로 본인에게 도움이 되어 돌아온다.
올 3월 미국 출장 중 워크숍에서 우연히 프로 재즈 뮤지션인 마이클 골드 박사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공통의 관심사를 발견했다. 재즈의 즉흥연주가 비즈니스에 주는 영향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후 나는 한국의 한 세미나에서 발표를 의뢰받고는 그를 떠올렸고, 주최 측에 추천을 하여 한국에서 올 6월 공동으로 발표를 했다. 이번 주에는 그가 미국에서 발표를 하는 자리에 나에게 공동 진행의 기회를 주었다. 이제 우리는 한국에서 또 다른 프로젝트를 기획 중이다.
이뿐 아니다. 일자리나 사업의 기회가 있을 때 사람들은 종종 약한 연대의 지인 중 최근에 만났거나 그와 나눈 인상적인 대화가 기억이 나서, 혹은 그 사람이 도와주었던 것에 보답하고자 전화기를 든다. 나이가 들고 사업 경험이 쌓일수록 소개와 추천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몸으로 느끼게 된다. 네트워킹을 하라는 것이 사람들과 더 많이 만나고 더 자주 술이나 밥을 먹으라는 것은 아니다. 우연한 기회에 만난 사람들과 가능하면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 만약 내가 갖고 있는 정보나 기술로 큰 부담 없이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당장 내게 돌아오는 것이 없더라도 먼저 베풀라는 것이다. 약한 연대의 인연에게 베푼 작은 도움이 때로는 내 다음 직장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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