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실 에어컨은 안 켜져요. 2학기 때는 2도 더 낮춰주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왜 우리만 미워하세요!”
16일 오후 1시 10분 서울 영등포구의 A고등학교 행정실에 한 학생이 뛰어와 따지듯 물었다. 오후 수업이 시작됐는데도 교실에 에어컨이 켜지질 않자 행정실에 항의하러 온 것. 이 학생은 긴 교복 바지 대신 체육복 반바지를 입고 있었지만 이마와 목덜미, 콧잔등에선 계속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행정실 직원은 “지금 에어컨이 과부하 상태여서 그렇다”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겨우 진정시켜 돌려보냈다.
전국 1400여 개 초·중·고교가 짧은 여름방학을 마치고 16일 개학한 가운데 일선 학교에선 꺾일 줄 모르는 폭염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 상당수 학교에서는 ‘전기요금 폭탄’ 걱정에 에어컨 가동을 줄이면서 학생들은 무더위 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다.
이날은 서울을 비롯한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 폭염 경보와 주의보가 내리는 등 더위가 기승을 부려 A고도 모든 교실에 에어컨을 가동했다. 그런데 일부 교실에 에어컨이 멈춘 것은 최대전력관리장치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 장치는 전기사용량이 설정한 수준에 육박하면 무작위로 교실의 에어컨 가동을 중단시킨다.
A고가 일부 교실에 에어컨이 꺼지는 것을 알면서도 이 장치를 쓸 수밖에 없는 것은 한꺼번에 많은 양의 전기를 사용하면 1년 내내 비싼 요금을 내야 하는 교육용 전기요금 구조 때문이다. A고 행정실장은 “피크 사용량이 많아지면 학교에는 1년 내내 부담이 될 수밖에 없어 학생들이 원하는 대로 시원하게 해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라며 “예상치 못하게 전기요금이 많이 나오면 학습과 관련된 다른 비용을 줄일 수밖에 없어 수업의 질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추산한 올해 전력 총사용량 대비 교육용 전기요금의 단가는 kWh당 125.8원으로, 산업용 전기 요금(107.4원)보다 17% 비싸고, 누진제가 적용되는 주택용(123.7원)보다도 높다.
이 학교는 전기요금 부담 때문에 체육시간이나 점심시간, 쉬는 시간 등에는 모두 에어컨을 끄고 1·2학년보다 3학년을 배려하는 방식으로 전기사용량을 줄이려 노력했다. 하지만 올해 폭염이 계속되면서 지난해 여름 한 달에 700만~800만 원 수준이던 전기요금은 올해 1000만 원이 훌쩍 넘을 것으로 학교 측은 보고 있다. 지난주에는 50분짜리 수업을 모두 40분으로 줄이고, 대학 수학능력시험이 100일도 남지 않은 고3 학생들도 오후 2시 이후에는 모두 귀가시키기도 했다. 이날 점심시간에 교실에 앉아 휴대용 선풍기를 얼굴에 대고 있던 3학년 장모 군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나니 수업에 집중하기 힘들다”며 “고3이라 공부만 해도 시간이 모자란데 땀을 식히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다 쓴다”고 말했다.
다른 학교에서도 냉방을 충분하게 하지 못하면서 학부모의 항의를 받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 노원구의 B고 행정실장은 “지난주에만 학부모의 민원 전화를 20통 넘게 받았다”며 “학교에서 효과를 느낄 수 있을 만큼 요금 감면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주 모든 수업을 10분씩 줄인 서울 동작구의 C고 교장은 “전기요금이 부담된다고 정규 수업시간에 에어컨을 끌 수는 없어 틀어주고는 있지만 많이 나오는 전기요금 때문에 더 필요한 곳에 돈을 쓰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폭염이 계속되면서 일부 학교는 아예 개학을 연기했다. 경기 평택의 은혜고와 안산의 국제비즈니스고, 충북 보은의 보은자영고, 대전의 충남여중 등은 19~22일로 각각 개학을 연기했다. 또 전국 시도교육청은 일선 학교에 학교장 재량으로 단축수업을 검토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상당수 학교는 수업 시간을 10분 줄이고, 체육수업을 실내 수업으로 대체하는 등의 방법으로 폭염에 대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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