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女)가 들어가야 완성되는 글자들, 편견이 만들어낸 혐오입니다. 간사할 간(奸), 간음할 간(姦).’ ‘성범죄 교육, ‘하지마’ 라고 가르치는 게 우선입니다’
13일 오후 3시경 2호선 신촌 지하철 역. 화장품, 학원, 게임회사, 영화 등을 홍보하는 광고 20여개가 8초마다 바뀌는 디지털 광고판 위로 이런 문구가 적힌 게시물이 간간이 스쳤다. 광고를 본 대학원생 백모 씨(27·여)는 “남녀 차별적 시선은 경계하지만 한자에 계집녀자가 들어간 걸 두고 편견이 담겼다고 주장하는 건 억지스러운 것 같다”고 말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여성시대’가 제작한 이 광고물은 현재 서울의 강남, 신촌, 홍대, 교대역 내에 12일부터 게시 중이다. 이달 4일 위의 게시물을 포함해 ‘여성은 잠재적 범죄유발자가 아닙니다’ 등의 문구가 들어간 광고도안 11개가 서울메트로의 심의를 통과했다. 메트로 측은 ‘남자는 다 짐승? 그렇다면 남성에게 필요한 것은 여성의 몸이 아닌 목줄입니다’ ‘성욕=식욕? 배고프다고 가게에서 빵을 훔쳐먹나요?’ 등의 문구가 적힌 도안은 논란이 예상된다며 반려했다.
해당 광고를 두고 온오프라인 상에서는 ‘남혐(남자 혐오)을 부르는 광고’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광고를 만든 여성시대가 워마드, 메갈리안 등과 함께 3대 대표 여혐혐(여성혐오를 혐오) 커뮤니티라는 점도 논란이 됐다. 일베, 보배드림 등 남초 사이트에선 ‘저런 광고가 싫은 이유는 남녀 갈등을 조장하기 때문’ ‘공감 1%도 안 되는 비유’ 등 반발하는 글이 쏟아졌다. 지난달 19일엔 심의 과정 중에 있던 여성시대 광고 중 일부가 광고대행사의 실수로 지하철 역 내에 게시돼 ‘여혐혐 광고를 내려달라’는 민원이 빗발치기도 했다.
하지만 광고 게재까지 막는 건 지나치다는 의견도 나온다. 메트로 관계자는 “광고심의위원회에서도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할 수 있는 방향을 염두에 두고 심사했다”고 강조했다. 한 게임사이트에 관련 게시물을 올린 네티즌은 ‘혐오에 대한 미러링(Mirroring)엔 반대하지만 여성에 대한 차별이 여전한 건 사실 아니냐’며 여성시대 광고를 옹호했다.
‘여혐 대 남혐’ 논란은 온라인상의 흔한 대결구도로 자리 잡았다. 최근 논란이 됐던 각종 패치도 폭로 대상이 남녀로 확실히 구분됐다. ‘강남패치’와 ‘한남패치’는 각각 화류계 여성과 남성을 폭로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이며, ‘오메가 패치’ 계정은 지하철 임산부 석에 앉은 남자들을 대상으로 신상을 폭로한다. 서울 신촌 지역 대학생들이 10년 가까이 운영해 온 온라인 커뮤니티 ‘타임테이블’은 최근 여성과 남성을 혐오하는 발언들로 회원들 간 갈등이 심해지자 “다음달 11일 사이트를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예전엔 여성단체 등이 주최가 돼 성차별에 항의했다면 요즘엔 온라인에서 게릴라식으로 집단화된 목소리를 낸 뒤 오프라인으로 등장하는 식”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성차별적 행위가 여전히 잔류하고 있다는 걸 개개인이 인식하고 있는 한 이와 같은 극단적인 갈등은 계속 표면으로 드러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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