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인 15일 0시 반경 부산 동구 수정2동 치안센터에 남루한 차림에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한 할머니가 검은 비닐봉지 담긴 돈을 내놓으며 기부 의사를 밝혔다. 봉지에는 1만 원짜리 240장, 5만 원짜리 32장 등 400만 원이 들어있었다. 경찰이 돈의 출처를 묻자 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급되는 생계비 중 쓰다 남은 돈”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기력이 떨어진 할머니를 우선 치료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해 인근 병원으로 후송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게 빵과 우유가 전부”라며 치료를 거부했다.
그 사이 경찰이 할머니의 인적사항을 파악한 결과 치안센터 근처 동구 수정동 단칸방에 세 들어 사는 주덕이 할머니(79)로 밝혀졌다.
주 할머니는 “무릎 수술이나 틀니를 하는 데 사용할까도 했지만 아픈 아이들을 위해 쓰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며 “잘 사용해 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경찰은 4시간 동안 실랑이를 하며 “이 돈은 무릎치료 등 여생을 위해 쓰는 것이 맞겠다”며 기부를 만류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버럭 화를 내며 “왜 내 뜻을 몰라주나. 기부도 마음대로 못 하냐”며 돈 봉투를 던져버리고 집으로 가버렸다.
입장이 난처해진 경찰은 돈을 보관하고 있다가 연휴가 끝난 16일 동구 수정2동 주민센터에 이 사실을 알렸고 사회복지담당자와 경찰이 주 할머니의 집을 방문해 의사를 다시 한번 확인한 뒤 17일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할머니의 뜻과 성금 400만 원을 전달했다.
이 돈은 주 할머니가 기초생활수급자 월 생계비 53만 원 중 월세와 식비로 쓰고 남은 돈을 수년간 모은 것이었다.
처음부터 할머니를 접촉한 장호영 동부경찰서 수성지구대 4팀장(55)은 “나눔은 얼마를 가졌느냐가 아니라 얼마를 나눌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 같다”며 “자신도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인 할머니의 뜻이 너무 완고해 머리가 숙여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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