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 재능기부에 주민 마음 열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8일 03시 00분


마을 곳곳에 벽화 그려주고… 학생들에 방과후 웹툰 수업
서울 문래예술창작촌의 상생 노력

서울 영등포구 문래예술창작촌의 한 작업실에서 웹툰작가 한연주 씨(왼쪽)가 학생들에게 웹툰 창작 방식 등을 설명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서울 영등포구 문래예술창작촌의 한 작업실에서 웹툰작가 한연주 씨(왼쪽)가 학생들에게 웹툰 창작 방식 등을 설명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얼마 전 서울 영등포구 문래예술창작촌의 한 작업실에서 특별한 수업이 열렸다. ‘만화인간’이란 필명으로 활동 중인 웹툰작가 한연주 씨(32·여)가 근처 중학생들을 상대로 진행하는 웹툰 수업이었다. 한 씨는 웹툰의 스토리 전개방식 등 학생들이 궁금해하는 창작기법을 천천히 설명했다. 한 씨는 유명한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을 예로 들며 딱딱한 이론을 알기 쉽게 풀어줬다. 아이들은 한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노트에 빠짐없이 받아 적었다.

이날 강의는 올 5월부터 시작된 ‘방과후 수업’ 중 하나다. 지역의 예술가 7명이 영등포구와 협의를 맺고 초중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웹툰과 아트플라워 등 예술 관련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실시되는 방과후 수업에서는 좀처럼 배우기 힘든 내용들이라 학생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웹툰작가를 꿈꾸는 엄신영 양(14)은 “현직 작가에게 수업을 듣고 있다는 게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학교에선 배우기 힘든 내용을 선생님의 생생한 경험담과 함께 들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예술가들이 지역 아이들의 선생님을 자처하고 나선 건 이들이 선택한 주민들과의 ‘상생(相生)법’이다. 창작촌은 문래동 철공소 거리에 예술가들이 터를 잡으면서 생겨났다. 저렴한 작업공간을 찾던 예술가들이 빈 철공소 자리에 들어선 것이다. 지금은 300명가량의 예술가가 정착하면서 창작촌을 이뤘다.

하지만 최근까지 이들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문래동 창작촌이 입소문을 타면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시도 때도 없이 몰려드는 관광객들 때문에 철공소 직원들은 작업을 방해받기 일쑤였다. 일부 관광객들이 직원들의 작업현장을 아무 동의 없이 카메라에 담으면서 종종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실제 인근 철공소에는 그간의 갈등을 보여주듯 ‘일하고 있습니다. 초상권을 지켜주세요’ 같은 협조문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매일 얼굴을 맞대야 하는 주민들과 ‘불편한 관계’가 계속되자 예술가들은 지역 주민들과의 상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마을 곳곳에 벽화를 그리고 용접마스크와 망치 등 철공소 직원들이 사용하는 작업도구 모양의 액세서리도 만들었다. 작품 일부는 지역 철공소의 도움을 받았고 수익도 나눠 가졌다.

예술가들이 자연스럽게 지역사회와 결합하면서 주민들의 마음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과후 수업에 대한 주민들의 호응이 이어졌고 8개 초등학교는 창작촌 예술가들의 수업을 다음 달부터 정규교과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창작촌에서 문화기획자로 활동하는 임채휘 씨는 “문래동 창작촌 거리에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주민들이 피해를 보는 등 최근까지 불편한 관계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지역사회가 잘돼야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는 만큼 앞으로도 주민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웹툰#재능기부#방과후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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