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범죄자에도 급수가 있다고 본다. 남의 마음이나 신체, 재산에 해악을 끼치는 건 똑같지만 분명 차이가 있다. 격한 나의 이분법적 사고로는 능지처참해야 할 범죄자와 그냥 보통의 범죄자, 이렇게 나눌 수 있다. 조직폭력배나 사기꾼, 제비족 등은 직업 자체가 죄 짓고 사는 부류이니 ‘보통’으로 분류하면 된다. 진짜 문제는 공공의 신뢰로 먹고살면서 그걸로 자기 배를 채우거나 한눈팔며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족속이다. 국민이 권한을 맡겼더니 인허가를 내주는 조건으로 뒷돈을 받아 챙기는 비리 공무원이 대표적이다. 아이 엄마의 신뢰를 팽개치고 아이를 죽음으로 내모는 ‘통학버스’, 곰팡이 감자를 물로 씻어 아이들 식판에 버젓이 올려놓는 ‘학교 급식소’도 빠질 수 없다. 믿고 내 몸을 맡겼는데, 더러운 손을 뻗치다 적발되는 의료기관 종사자 이야기도 좀처럼 그치질 않는다. 수많은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곳도 있지만 절대적인 믿음을 받아놓고 이를 배신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신뢰를 먹고 사는 사람이 배신하면 부작용이 이만저만 아니다. 우선 한 명이라도 적발되면 그 분야 전체에 불신이 생긴다. 일부 학교의 문제라곤 하지만 돈 받고 엉터리 식재료로 급식을 만들다 적발되면 정상적으로 잘하던 학교들까지 일제 점검을 받느라 시간과 품을 낭비해야 한다.
담당 영양사와 근무자가 서로 협력해 일 잘하던 학교에서조차 고추장 한 통 살 때 교감 교장의 결재를 받는 번거로운 절차가 생길 수도 있다. 그렇게 해도 학부모는 ‘우리 애 먹는 밥은 괜찮을까’ 하고 늘 노심초사해야 하고 급식소 근무자 전부가 도둑질하는 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처벌 규정을 강화했다는데도 학원이나 어린이집 유치원 통학버스에 치여 죽고 갇혀 있다 사경을 헤매는 아이가 속수무책으로 쏟아지고 있다. 전남 여수의 한 어린이집 통학차량에 두 살배기 아이가 치여 숨진 건 이달 10일이다. 보름 가까이 지난 24일 여수시청 담당과에 물어보니 “아직 경찰에서 수사 결과가 통보되지 않아 행정처분은 못 했다”고 했다. 이런 사고를 내면 폐원 또는 1년 이내 운영정지가 가능하다고 법에 명시돼 있지만 차근차근 절차를 밟느라 사고를 낸 어린이집엔 아직 별일이 없다. 참 관대하다. 아이가 죽었고, 누가 뭘 잘못했는지 다 나와 있는데 경찰에서 종이서류를 보내지 않았다면서 손놓고 있는 게 민주적 절차인가. 아침마다 아이를 통학버스에 태워야 하는 전국의 수많은 엄마는 눈에서 아이가 안 보이는 순간부터 ‘혹시나’ 하는 불안감을 갖고 살게 됐는데 말이다.
아이를 키우고, 아플 때 치료받으며, 독이나 나쁜 재료를 섞지 않고 만들었으리란 믿음으로 돈 내고 음식을 사먹는 일 모두 사회를 떠받치는 기본 ‘제도’다. 이런 부분에서 범죄가 반복된다면 그 사회는 시나브로 망하고 만다. 아이에게 썩은 감자를 먹인 자에겐 교도소 급식으로 똑같이 먹이고, 아이를 폭염 통학차량에 방치한 자를 붙잡아 똑같은 고통을 주면 왜 안 되나.
법에는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사적 보복을 하지 않도록 국가가 대신 형벌권을 집행하는 의미도 있다. 허나 잠재적 피해자인 국민이 보기엔 턱없이 약한 솜방망이로만 두드리니 하는 소리다.
아니, 내가 잘못 생각했다. 가만 보니 이 나라에서 ‘응분의 처벌’을 기대하는 건 헛된 망상이다. 자기 죄 가리는 데 힘을 써 죗값을 제대로 치르지 않은 사람이 경찰 중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 국민 안전을 외치고 있으니 뭘 더 기대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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