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희 前감독 “친한 선후배 계속된 부탁… 한번 들어주면 늪에 빠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9일 03시 00분


[심층탐사기획/프리미엄 리포트/스포츠 승부조작 ‘검은 거래’]
강동희 前감독이 밝힌 승부조작


“친절하게 다가오는 사람들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 사회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은 주변에서 잘해 주면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 그저 의리라고만 생각하고 가볍게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승부 조작에 연루됐던 강동희 전 프로농구 감독은 28일 열린 프로스포츠 부정방지 강연에서 프로야구 kt 선수들에게 자신이 승부 조작에 휘말리게 된 과정 등에 대해 털어놨다.

강 전 감독은 2011년 프로농구 정규리그에서 브로커들에게 네 차례에 걸쳐 4700만 원을 받고 승부를 조작한 혐의로 구속돼 징역 10개월에 추징금 47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이날 강연은 그가 출소 후 참석한 첫 공식 행사였다. 최근까지 대인기피증에 시달렸다는 강 전 감독은 “선수들은 정말 등잔 밑이 어둡다. 가장 친한 사람한테 걸려들면 여지없이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말했다.

강 감독은 알고 지내던 후배로부터 승부 조작 제의를 처음 받았다. 그는 “승부조작을 제의하는 사람들이 다가와 처음에 ‘누구나 다 하고 있다. 모 구단의 어떤 선수들도 하고 있고 주변 감독도 누구나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이런 식으로 내 생각을 떠 봤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승부 조작에 관여하고 있다는 말이 와 닿지 않았다. 처음에 거절했기 때문에 다시는 안 오겠지 했는데 한 달 후 다시 숙소로 찾아와 계속 주변에서 많이들 하고 있다며 승부 조작을 권유했다”고 말했다.

후배로부터 동부와 SK의 경기 1쿼터에서 주전을 빼달라는 부탁을 받은 강 감독은 당시 “이미 플레이오프 진출이 확정된 상태에서 주전을 빼는 것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고 말했다. 후배는 강 감독이 일단 승부 조작에 연루되자 계속해서 승부 조작을 요구했다. 강 감독은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고, 이후에는 조직폭력배까지 동원된 협박에 시달렸다.

전 축구 국가대표 최성국이 승부 조작에 휘말린 경우도 비슷하다. 승부 조작 혐의로 프로축구계에서 퇴출된 최성국은 올해 초 한 인터넷 방송에서 “한 선배가 ‘나가서 천천히 뛰기만 하면 용돈 식으로 얼마를 주겠다’는 말을 동료 선수들에게 해달라고 하더라. 처음엔 몇 번 거절했지만 선배 부탁이니까 얘기해 보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마침 상대 팀이 강팀이었기 때문에 ‘어차피 나가도 질 텐데’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후배들도 이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 경기에서 비겼다.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는데 그 형이 열 받아서 전화를 했다. 그때 ‘큰 게 있구나’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검찰에 따르면 당시 최성국에게 승부 조작을 지시했던 J, H, W 씨는 첫 번째 승부 조작이 무산된 뒤 다른 조직원 등 8명과 함께 최성국이 묵고 있던 호텔로 찾아가 협박했다. 최성국은 “전화를 걸어 묵고 있던 호텔의 어느 방으로 오라고 하더라. 방에 가보니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했던 여러 명이 있었다. 대장인 것 같은 사람이 조선족처럼 보였다. 그게 더 겁이 났다. 신고고 뭐고 이 상황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다”고 말했다.

B 씨는 “처음에는 브로커들이 곧바로 승부 조작을 제의하지 않는다. 선수들과 적극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컨디션이나 팀 전력 정보를 파악하고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승부조작을 제안한다”고 했다.

브로커들은 인간적인 친분을 이용해 선수들에게 접근하지만 선수들이 일단 승부 조작에 연루되면 온갖 협박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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