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의 2인자였던 이인원 부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난주 금요일이었다. 온라인 공간에는 고인이 극단적 선택을 한 데 대한 억측이 난무했다. 다소 황당하게 보이는 음모론을 펴는 이들도 있었다. 무슨 일이 터질 때마다 나타나는 현상이니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광화문 주변의 식당에서 옆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됐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성들은 이 부회장의 죽음을 소재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롯데그룹의 앞날이나 검찰 수사의 향방 같은 것엔 관심이 없었다. 귀동냥으로 들은 그들의 대화 한 토막.
“부회장도 결국엔 월급쟁이 아니냐. 월급이 우리의 수십 배라고는 하지만 따지고 보면 월급쟁이일 뿐이지, 뭐. 결국 월급쟁이만 안 된 거네.”
그들은 뜻밖에 재벌기업 부회장의 비극에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샐러리맨 신화’ 주역에 대한 부러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고인에 대한 애도인지, 자신들의 신세 한탄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넋두리가 이어졌다.
이런 넋두리의 종착역은 늘 같다. 정부에 대한 불만, 직장에 대한 불만, 가족에 대한 불만…. 썩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그들의 얼굴에서 그늘을 본 것은 착시였을까. 이 부회장의 죽음이 예기치 않게 ‘직장인의 행복론’으로 귀결된 셈이다.
갑자기 유학 중인 아들 녀석이 떠올랐다. ‘난 우리 가족에게 얼마나 잘하고 있나. 녀석에게 좀 더 살갑게 대해줄걸 그랬나.’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가슴 한 군데가 뻥 뚫린 것 같았다. 녀석과 티격태격하던 기억마저도 먹먹함으로 다가왔다.
언젠가 아들 녀석이 말다툼 도중에 “아빠. 자꾸 그러면 ‘꼰대’ 소리 들어요”라고 퉁명스럽게 내뱉은 적이 있다. 내 지적이 다 맞는데, 고리타분하고 자기들 세대에는 어울리지 않는단다. 내가 꼰대라니. 고백하자면, 살짝 충격을 받을 뻔했다.
회사에서는 못마땅한 상사를 부하직원들이 꼰대라 부른다. 꼰대를 감별하는 체크리스트도 인터넷 공간에 떠돈다. 과학적 근거가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이런 게 나돈다는 사실만으로도 직장인의 행복지수가 높지 않다는 점은 짐작할 수 있다. 다음 내용을 확인해 보시길.
첫째, 요즘 후배들이 노력은 하지 않고 남 탓만 하거나 조직에 대한 불평만 늘어놓는다고 생각하는가. 둘째, 회의나 사석에서 후배들에게 ‘자유롭게 말해’라고 했으면서 결국 해답을 자신이 제시하지는 않는가. 셋째, 후배들에게 ‘내가 너만 했을 때는’이란 말을 자주 하는가. 넷째, 후배들의 사생활에 대해서도 조언을 많이 하려는 편인가. 다섯째, 내 성공담을 후배들에게 얘기해 주고 싶은가.
몇 가지 항목이 더 있지만 이만. 자신에게 해당하는 항목이 많을수록 후배들이 싫어하는 꼰대에 가깝다. 이 체크리스트에서 ‘후배’를 ‘자식’으로 바꾸면 ‘꼰대 부모’인지 확인할 수도 있다. 요즘 자식이 거칠게 반항하고 있다면 꼭 자신을 돌아보시라.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말이 있다. 현실적으로 이 말은 진리에 가깝다. 조직이 구성원 개개인을 위해 스스로 변하는 것은 극히 드물다. 그러니 “요즘 같은 불경기에 월급 또박또박 나오는 직장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냐…”라는 말은 빈정거림이 아니라 위안에 가깝다.
지금 이 순간, 행복에 대한 그 많은 명언은 모두 공허하다. 현실은 한두 문장으로 요약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지금 여러분은 행복하신가. 그 답을 찾는 것은 영원한 숙제다. 숙제를 남기고 떠난 이 부회장의 영결식이 오늘 치러진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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