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숙제 전쟁에서 아이 키우는 비법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31일 03시 00분


코멘트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민호야, 숙제부터 하고 놀아야지.” 학교 갔다 오자마자 가방은 던져두고 TV부터 켜는 아이에게 엄마가 말한다. “이거 30분만 보고 할게요.” 만날 이런 식이다. 일기 몇 줄 쓰는 것도, 문제집 몇 장 푸는 것도 정신만 집중하면 10분도 안 걸릴 일을, 미루고 미뤄서 오후 8시가 넘어서야 시작한다. 그러고는 연신 하품을 하며 졸린 눈 비벼가며 얼마 되지 않는 숙제를 10시까지 잡고 있다. 엄마는 아이 손의 리모컨을 거칠게 낚아채어 TV를 꺼버린다. “또 10시까지 온갖 짜증을 다 내면서 괴발개발로 하려고 그래? 엄마가 항상 말했잖아. 학교 갔다 오면 숙제부터 하는 거야. 그리고 노는 거야.”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된 이즈음, 어느 집이나 다시 숙제전쟁이 시작된다. 엄마는 잔소리를 하고, 아이는 주토피아의 ‘늘보’처럼 속 터지게 움직인다. 느슨한 일상을 살던 아이가 다시 규칙적인 생활로 돌아가는 데는 시간이 좀 필요하다. 이때는 잔소리를 하는 것보다 기상시간부터 일정하게 관리해주는 것이 더욱 현명한 방법이다.

‘숙제 먼저 하고 놀아야 한다’는 말은 불변의 진리는 아니다. 사실 숙제를 하는 시점에는 정답이 없다. 아이 말대로 놀고 나서 숙제를 해도 된다. 문제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놀고 나서는 숙제를 제대로 안 한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가 숙제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생각이 정립되어 가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즉, 부모의 제안을 강제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그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느끼게 해야 한다.

아이가 생각한 방식과 부모가 제안한 방식을 일주일씩 해본다. 아이가 원하는 방법으로 먼저 해본다. “그래 알았어. 놀고 해. 어쨌든 숙제는 해야 하는 거야. 잠들기 전에 꼭 해야 해. 이번에는 네가 원하는 대로 한번 해보자.” 일주일간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하게 하되 어떠한 잔소리도 하지 않는다. 수첩이나 달력에 체크만 한다. 일주일 후 아이와 얘기할 때 결과가 부모가 예상한 대로였다고 해도 절대 비난해서는 안 된다. 그저 “해보니깐 어때?”라고 묻는다. 아이가 잘한 것 같다고 하면 “잘한 날도 있어. 근데 놀다가 늦게 숙제하려니까 힘들지 않았어?”라고 물어본다. 아이가 “그런 날도 있고 아닌 날도 있었어”라고 대답할 수 있다. “알겠어. 다음 일주일 동안은 엄마가 하자는 대로 해보자. 숙제 먼저 하고 놀아 보자. 그러고 나서 어떤 것이 너한테 맞고, 덜 힘들고 더 많이 놀 수 있는지 판단해 보자”라고 말하고 다시 일주일을 지낸다. 이 과정을 여러 번 거쳐서 좀 더디더라도 아이 스스로 언제 숙제를 하는 것이 자신에게 더 좋은지를 찾아내도록 한다.

모든 일에는 좀 더 효율적인 정답이 있긴 하다. 하지만 아이는 그 정답을 곧바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대부분의 아이는 추상적 사고만으로 정답을 배우기 어렵다. 직접 겪어 봐야 안다. 시간을 넉넉히 두고 기회를 줘야 한다. 만약 아이가 원하는 방식대로 했는데, 약속을 잘 지켜서 숙제를 잘했다면 인정해줘야 한다. 아이는 부모와 다른 사람이다. 일을 해결하는 자신만의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존중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초등학교 때는, 특히 저학년 때는 숙제의 질은 좀 따지지 말았으면 한다. 어떤 엄마는 아이 글씨가 예쁘지 않다며 옆에서 지우개를 들고 쓰는 족족 다 지워버리기도 한다. 그러면 아이는 무기력해진다. 숙제를 훌륭하게 해내지 못했어도 전부 끝냈으면 무조건 “잘했어”라고 칭찬해주어야 한다. 우선 숙제를 빨리 끝내는 것부터 몸에 배게 해야 한다. 숙제를 빨리 끝내기는 하는데 써 놓은 글씨가 엉망이라면 “네가 쭉 훑어봐서 정말 알아보기 힘든 글자 몇 개만 골라 봐”라고 한다. 아이가 고르면 “그래, 그건 좀 고쳐야겠다”라고 말해준다. 이렇게 본인이 찾고 지우고 고치게 해야 자신을 모니터링하는 능력이 길러진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건 숙제를 너무 잘해 보내기 위해서 아이를 잡지 말라는 말이다. 담임교사에게 우리 아이가 어떻게 보일지 너무 신경 쓰지 말라. 숙제에 대한 평가는 아이의 몫이다. 부모의 역할은 집에서 숙제를 해가도록 챙기는 것까지다. 아이의 숙제는 부모의 것이 아니라 아이의 것이다. 그 숙제를 어떻게 해갈지는 아이가 결정해야 한다. 부모가 아이 숙제에 너무 집착하면 아이는 그 숙제를 제 손으로 해가면서 얻을 수 있는 많은 것을 잃는다. 또한 아이가 갖는 교사나 부모, 공부에 대한 생각까지 그르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숙제전쟁#아이#2학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