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들강 강간살인’ 피고인 오락가락 진술…DNA 때문에?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31일 17시 00분


31일 오전 10시 광주지법 302호 법정.

광주지검 강모 검사가 ‘김모 씨(39)는 2001년 2월 4일 새벽 박모 양(당세 17세·고3)을 인터넷 채팅으로 만났다. 이후 박 양을 차량에 태워 전남 나주 드들강으로 데려가 성폭행한 뒤 목 졸라 살해했다’는 기소내용을 읽었다. 검사는 이어 ‘김 씨는 2003년 전당포 주인 등 2명을 살해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라고 덧붙였다.

강영훈 광주지법 형사합의 11부 부장판사가 피고인석에 앉아있던 김 씨에게 ‘드들강 강간살인 기소내용을 인정하냐’고 묻자 그는 ‘그렇지 않다’며 범행을 부인했다. 김 씨는 ‘박 양과 성관계를 맺은 기억조차 없다. 하지만 (박 양의 몸에서) 내 DNA(유전자)가 나왔다니 성관계를 맺었다고 추측 한다’고 했다.

김 씨는 2~3년 전 검경 수사에서는 ‘박 양이 숨지기 전 며칠 전 인터넷 채팅으로 만나 합의하에 성관계를 맺었다’고 주장했다. 김 씨가 드들강 강간살인 사건진술을 오락가락 번복하고 있다.

김 씨가 재판에 불리한 오락가락 진술을 하는 것은 DNA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남 나주경찰서는 사건 발생 직후 박 양이 성폭행을 당한 것으로 판단해 현장에서 범인의 체액을 채취했다. 경찰은 동종 전과자 등을 대상으로 수사를 벌였으나 범인을 잡지 못했다. 이후 2012년 대검찰청은 범인 체액과 김 씨의 DNA가 일치한다고 경찰에 통보했다. 김 씨의 유전자 확보는 성폭행범 조두순 사건이 터진 뒤 2010년 개정된 일명 ‘DNA법(범인 DNA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으로 재소자들까지 유전자를 채취해 가능했다.

경찰은 김 씨의 DNA가 확보된 만큼 강간살인범으로 처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 씨가 ‘인터넷 채팅으로 만나 합의하에 성관계를 맺었다’고 주장하자 수사는 난관에 부딪쳤다. 김 씨는 결국 검찰에서 무혐의처분을 받았다.

검경은 지난해 2월 재수사에 착수해 DNA로 김 씨의 혐의를 입증할 결정적 단서를 찾았다. 이모 서울대 법의학실 명예교수(70)는 ‘김 씨의 체액과 박 양의 생리혈이 섞이지 않은 것을 보면 성폭행 직후 살해된 것’이라는 감정결과를 내놓았다.

감정결과를 알게 된 김 씨는 범행을 부인하기 위해 성관계 상황에 대해 오락가락 진술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김 씨가 자신의 DNA를 결코 부정하지 못해 수사상황에 따라 말 바꾸기를 하고 있다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박 양의 엄마 최모 씨(59)는 재판이 끝난 뒤 “살인범 등의 공소시효를 폐지시킨 태완이법 덕분에 강간살인범을 처벌할 수 있게 됐다”며 “김 씨의 뻔뻔한 범행부인에 화가 치민다”고 말했다.

광주=이형주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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