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월 경북 구미의 한 제조업체 사장 이모 씨(69)가 구속됐다. 근로자 54명의 임금 7억4000만 원을 체불해 개인 소유 건물을 신축하거나 상가 매입 등에 쓴 혐의였다. 이 씨 회사의 일부 근로자들은 밀린 임금 때문에 생계까지 위협받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달에는 회삿돈과 직원들 임금을 빼돌려 도주한 뒤 다른 회사를 인수해 차명으로 운영한 이모 씨(59)가 구속됐다. 이 씨가 빼돌린 체불임금은 총 9억8000만 원이나 됐다. 이들처럼 임금을 고의, 상습적으로 체불한 혐의로 고용노동부에 적발돼 구속된 사업주는 올해만 8명이다.
외환위기(1997년)와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를 거치면서 한국의 상위 10% 소득집중도가 세계 주요 국가 중 가장 빠르게 높아진 것으로 분석된 가운데 악덕 사업주와 주요 산업의 구조조정 여파로 지난달까지 정부에 신고된 체불임금액이 1조 원에 육박했다. 올해 전체 체불액도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4일 고용부에 따르면 올해 1∼8월 임금을 받지 못했다며 진정을 낸 근로자는 21만4052명으로, 체불임금액은 9471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근로자 수는 12%, 체불임금액은 11%나 급증했다. 1∼8월 체불임금액은 5인 미만 사업장까지 집계를 시작한 2006년 이후 가장 많고, 9000억 원을 초과한 것도 올해가 처음이다.
이 추세가 계속된다면 올해 체불임금액은 1조4000억 원을 넘어 사상 최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의 연간 체불액(2014년 기준 1440억 원)의 약 10배에 이르는 수치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체불임금이 급증했던 2009년에는 1조3438억 원이었다.
여기에는 고의적, 상습적으로 임금을 체불하는 악덕 사업주 외에도 경기침체와 조선, 해운업 등의 구조조정으로 협력업체들이 하도급 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이 주요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고용부는 고의·상습 체불 사업주의 명단을 지속적으로 공개하고, 체불임금 외의 부가금까지 지급하도록 하는 제도를 신설해 체불임금의 두 배까지 보상토록 할 방침이다. 퇴직 근로자에게만 지급되던 지연이자 역시 재직 근로자까지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대형 조선소에는 전담 감독관을 둬 하도급 대금과 임금 체불 여부를 집중 조사할 계획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체당금 제도 외에도 민사소송 지원 등 체불임금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조치를 확대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4일 국회입법조사처가 세계 부(富)와 소득 데이터베이스(WWID) 및 국제통화기금(IMF)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2년 기준 한국의 상위 10% 소득집중도는 44.9%로 나타났다. 이는 전 세계 33개 주요국 가운데 미국(47.8%) 다음으로 높은 수치다.
소득집중도는 상위권의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말하며 소득불평등 정도의 판단 기준이 된다. 2012년 상위 10% 소득집중도가 40%를 넘는 국가는 미국과 한국, 싱가포르(41.9%), 일본(40.5%) 등 4곳뿐이었다.
1995년 한국의 상위 10% 소득집중도(29.2%)는 당시 미국(40.5%)은 물론이고 싱가포르(30.2%), 일본(34%), 뉴질랜드(32.6%) 등 대부분 국가보다 낮았다. 하지만 외환위기 후 급상승해 2012년에는 44.9%까지 치솟았다. 소득집중도 증가 폭은 세계 주요국 가운데 가장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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