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50대 A 씨는 지난해 11월 아찔한 경험을 했다. 다리에 마비가 와 움직이기 어렵게 되자 집에 설치된 인터넷전화로 119에 구조를 요청했다. 신고 후 5분 안에 도착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구조대는 15분이나 지난 후에야 A 씨 집에 도착했다. A 씨가 정확한 주소를 기억하지 못한 데다 통신사 전산망의 A 씨 인터넷전화 주소는 예전에 살던 집으로 등록돼 있어 구조대가 A 씨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B 씨는 지난해 11월 비슷한 일을 겪었다. 갑작스러운 현기증으로 정신이 혼미해진 B 씨는 119에 전화를 걸었다. 상황실에서 파악한 주소는 이사하기 전 B 씨가 살던 부산. 다시 B 씨의 주소를 확인하고 출동 지령을 내리는 데 규정(1분)의 2배가 넘는 2분 16초가 걸렸다. 다행히 B 씨의 집이 멀지 않아 구급대는 6분 만에 도착했다.
인터넷전화가 편의성과 저렴한 이용료 덕분에 가입자가 급증하고 있지만 가입자 상당수가 실제 가입자 위치와 통신사 등록 주소가 달라 긴급 상황에 대처하는 시간이 지연되는 등 위험 사각지대에 놓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김재경 새누리당 의원이 국민안전처에서 제출받은 ‘인터넷전화를 이용한 119 긴급구조 요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인터넷전화를 이용한 신고 7만6138건 중 18.6%가 실제와 통신사 전산 간 주소가 달랐다. 올해 7월까지 인터넷전화 신고 건수 4만701건 중 32.4%가 주소가 달랐다.
인터넷전화는 통신사 직원이 설치할 때 방문해 주소를 맞추는 일반 집 전화와 달리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어디서나 쉽게 설치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해외 교민들이 국내에서 가입한 인터넷전화를 현지로 가져가 국내 전화처럼 이용하거나 도시의 자녀가 자신의 명의로 고향의 부모님 집 전화를 인터넷전화로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편리함 때문에 일부 가입자가 통신사 전산의 주소를 실제 장소와 맞추는 걸 놓치면서 문제가 생기고 있다. 통신사들은 약관에 따라 긴급 신고를 하는 가입자 주소를 자동으로 소방 당국에 전송하는데 A 씨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특히 유선 인터넷과 인터넷전화를 서로 다른 통신사에 가입했을 경우 이런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안전처 중앙소방본부 관계자는 “인터넷전화 신고를 접수하면 매뉴얼에 따라 정확한 주소를 파악하기 위해 위치를 수차례 확인하지만 신고자가 의식을 잃는 등 주소 전달이 어려운 상황일 경우 정확한 신고지로의 출동이 지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응급환자 소생률은 4분 내 출동할 경우 50%이지만 1분만 지나도 25%로 줄어든다.
올 6월 현재 인터넷전화 가입자는 LG유플러스, KT, SK브로드밴드, 한국케이블텔레콤 등 10개 사, 1238만 명에 이른다. 통신사들도 물리적으로 전수조사를 할 수 없어 고객이 알려주는 주소지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올 2월 국민안전처가 KT와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에 인터넷전화 주소 불일치 문제 해소를 촉구했지만 대책은 요금청구서, 홈페이지 등을 통한 주소 변경 안내뿐이었다.
KT 관계자는 “가입자에게 관련 내용을 소개하면서 반드시 주소를 일치시켜야 한다는 걸 알리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어 공지의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재경 의원은 “인터넷전화 설치와 사용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국민 안전과 관련된 주소 변경의 필요성에 대해선 인식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관계 당국은 통신사들이 정기적으로 변동 사항을 확인하고, 고객 스스로 주소 변경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약관 개정 및 제도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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