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입고 자고… 문앞에 생존가방… “밤새 안녕”이 인사가 된 경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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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대비 제대로 하자]시민 불안감 가시지 않아
기와 떨어질까봐 담장 옆 주차 꺼려… 수학여행철 보문단지도 ‘개점휴업’
지진 전문가 턱없이 부족
안전처 단 2명… 지진예산 10억… 日은 지진연구비로만 1600억원

 “아이고, 잘 살아 있었어?”

 요즘 경주시민들의 안부 인사다. 22일 오전 경북 경주시 한 대형마트에서 만난 시민들은 연신 지진 이야기를 꺼내며 서로에게 “몸을 잘 챙겨라”며 걱정했다. 계속되는 지진에 비상식량을 찾는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평소 인스턴트식품을 전혀 먹지 않는다는 한모 씨(33)는 이날 즉석요리와 부탄가스, 과자 등을 샀다. 이날 이곳의 라면과 생수 판매 코너는 절반이 비워져 있었다.

○ 불안이 일상이 된 경주

 잦은 지진 발생에 시민들의 불안감도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정혜선 씨(33·여)는 “아기가 있어서 특히 걱정이 많다”며 “지진이 나면 바로 대피할 수 있도록 방문 앞에 미리 짐을 싸 뒀다”고 말했다. 건물이 무너져 갇힐 경우를 대비해 책상 아래 등의 공간에도 따로 먹을 것을 챙겨 뒀다.

 한성수 씨(48)는 수면 습관까지 바꿨다. 이전에는 편하게 속옷만 입고 잤는데 지진 후부터는 긴 운동복을 입고 잔다. 옷장 앞에는 양말도 따로 꺼내 놓았다. 기와가 떨어질 것에 대비해 담장 옆에 주차할 때 더욱 신경을 쓴다고 했다.

 식당과 숙박업소도 울상이다. 연말까지 잡혀 있던 예약이 상당 부분 취소됐기 때문. 수학여행으로 한창 북적일 보문단지 근처 숙박업소 대부분은 개점휴업 상태였다. 한 유스호스텔은 학부모의 항의로 수학여행을 온 학교가 밤 12시에 다시 돌아가기도 했다. 지진이 계속되자 평범한 일상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는 시민이 많았다. 이들은 “두 발 뻗고 낮잠 자고, 아이와 웃으며 이야기하는 것 등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 지진 전문가 없어 불안감 더 커져

 그러나 이런 불안한 일상은 당장 해소되기는 어렵다. 지진 분야 전문가와 조직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 재난 분야 컨트롤타워인 국민안전처엔 단 두 명, 연구기관인 국립재난안전연구원에도 지진 전공자는 6명에 불과하다. 특히 이들의 전공은 내진설계로 단층 등을 연구하는 지질학 전공자는 단 1명도 없다.

 기상청에는 지질학을 전공한 인력이 필요하지만 지난 5년간 채용한 인력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다. 신동훈 전남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지진 분야를 전공한 학생들이 졸업 후 갈 곳이 마땅치 않다”며 “기상청에 취업하기 위해 기상 분야를 복수전공하거나 자원개발 관련 회사로 취직을 준비한다”고 말했다.  학계 전문가도 부족하다. 현재 지질학 관련 학회 등에 참여하는 지진 분야 전문가는 50명 정도. 이 중 정부 지진 분야와 대학, 연구실 등에서 활동 중인 인력을 추리면 20여 명으로 뚝 떨어진다. 갑자기 지진이 발생하면 연구 수요가 폭증하지만 전문가가 워낙 없다 보니 한 명에게 2, 3개씩 연구과제가 떨어진다. 특정 단층만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학자가 있는 일본과는 달리 여러 업무를 떠맡을 수밖에 없다.

 일본은 학회 활동을 하는 지진학 연구자 수만 1500명에 달한다. 또 지진 관련 예산 기준으로 국민안전처가 올해 약 10억 원만 확보한 것과 달리 일본은 지진연구비만 146억 엔(약 1600억 원)에 이른다. 국민안전처 지진 예산 중에서 연구개발비만 따지면 2억 원 수준에 불과하다.

○ 지진, 양산단층 따라 움직였다.

 
기상청은 이번 경주 지진이 양산단층이 움직여 발생한 것으로 분석했다. 기상청이 발표한 분석에 따르면 본진을 비롯해 강한 규모(규모 4.0 이상)로 발생한 지진은 양산단층의 분포를 따라 남남서 방향으로 차츰 옮겨 간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기상청은 재난문자 발송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 현재 216곳인 관측소를 2018년까지 314곳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고윤화 기상청장은 “11월부터 국민안전처 문자전송 체계를 통해 바로 재난문자를 발송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상청은 또 12일 최대 규모 5.8 지진의 진앙 위치를 두고 전진(규모 5.1)보다 남쪽이었다고 밝혔다. 당초 본진이 전진보다 북쪽에서 발생했다는 발표와 달라 오보 논란이 일었다.

 한편 문화재위원회는 경주 지진 피해 뒤 해체 수리 논란이 일었던 첨성대에 대해 해체 수리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문화재청은 “22일 문화재위원회가 첨성대의 구조 안정성을 검토한 결과 붕괴될 정도로 위험한 상태는 아닌 것으로 판단됐다”고 밝혔다. KDB산업은행은 지진 피해로 자금난을 겪고 있는 경주 지역 중소·중견 기업에 긴급경영안정자금(중소기업 최대 50억 원, 중견기업 최대 70억 원)을 지원하고,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은 피해를 입은 중소·중견기업, 농어업인들에게 대출보증 비율을 늘려주기로 했다.

임현석 lhs@donga.com / 경주=정지영 기자/ 도쿄=장원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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