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1시 10분경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서교동 화재 의인’ 고 안치범 씨(28)의 영정사진과 관이 운구차를 향하자 유가족의 울음소리는 더욱 격해졌다. 운구차에 실린 관에 손을 뻗었다 힘없이 내린 안 씨의 어머니는 손에 꼭 쥔 손수건을 입에서 떼지 못한 채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아내를 부축하고 있던 안 씨의 아버지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안 씨의 두 누나는 동생의 죽음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서로 부둥켜안고 통곡했다.
방화범이 지른 불길에 뛰어들어 잠든 이웃들을 깨우고 쓰러졌다 끝내 사망한 안 씨의 발인이 이날 엄수됐다. 안 씨는 9일 자신이 거주하던 서울 마포구 서교동 원룸 건물에서 불이 나자 최초 신고를 한 뒤 이웃들을 대피시키다 연기에 질식했고 열흘 넘게 사경을 헤매다 20일 세상을 떴다. 유가족은 장례 절차를 모두 마치고 안 씨를 의사자로 신청할 예정이다.
발인 직전까지 안 씨를 찾는 조문객의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상원 서울지방경찰청장, 이근욱 성우협회 이사장, 성우 배한성 씨 등이 이날 빈소를 찾아와 유가족을 위로했다. 21일에도 화재 당시 무사히 대피했던 이웃들과 일반 시민들, 그리고 황교안 국무총리와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등 정관계 인사들까지 조문을 와 안 씨의 마지막 길을 지켰다. 배한성 씨는 “성우를 꿈꿨던 청년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생전에 일면식도 없었지만 찾아왔다”며 애도를 표했다.
당초 안 씨의 발인은 이날 오전 6시 반으로 예정돼 있었지만 전날 갑작스럽게 부검이 결정되며 늦춰졌다. 형사사건과 관련된 사망자는 유가족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부검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 씨의 어머니는 “부검을 하게 돼 속상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 일단 우리 치범이가 의사자로 선정될 수 있도록 결과가 잘 나와야 할 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유가족은 안 씨가 입원했던 이대목동병원에 ‘병사’로 표기됐던 사인을 ‘변사’로 수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화상으로 인한 바이러스 감염이 사인은 맞지만 ‘병사’로 표기되면 의사자 지정에 불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안 씨의 도움을 받았다’는 이웃들의 증언 등은 확보된 상태지만 건물 내부에 폐쇄회로(CC)TV가 없어 경찰은 안 씨가 1층까지 내려왔다 다시 건물로 들어가는 장면만 확인한 상황이다.
안 씨의 유가족은 이웃들과 소방 현장 책임자의 진술 등 증거자료들을 보충해 제출할 계획이다. 정치권에서도 안 씨가 의사자로 지정될 수 있도록 논의했다. 이정현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 관계자에게 안 씨의 의사자 지정을 건의했으며 심사위원회 상정을 약속받았다”고 말했다.
의사자 선정은 보건복지부 산하 의사상자 심사위원회의 심의를 걸쳐 결정된다. 박재찬 복지부 사회서비스자원과장은 “많은 시민이 안 씨가 의사자로 선정되길 바라고 있는 만큼 심사위원회에 제출되는 서류와 증거자료 등을 꼼꼼히 챙겨 의사자 선정 요건에 충족될 수 있도록 신경 쓰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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