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최우열]고교동문의 함정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3일 03시 00분


최우열 사회부 기자
최우열 사회부 기자
 올해 5월 구속된 홍만표 변호사의 ‘법조 브로커’ 이민희 씨(56)는 1999년경엔 서울 강남 한 고급 바의 지배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 바를 자주 찾던 고객 중 대검찰청에 근무하는 기획관(차장급) S 검사도 있었다. 그는 후배들을 데리고 술을 마셨는데, 그중 총명하게 생긴 검사 하나가 이 씨의 눈에 들어왔다. 부장급 J 검사였다. 술을 같이 한잔 마시니 취기가 돌며 흥이 났고, 나이를 따져 보니 J 검사가 한두 살 많았지만 이 씨는 “동갑이다”라고 속였다. “친구하자”고 의기투합했고 서로 말도 낮췄다.

 얼마 뒤 이 씨는 ‘우연히’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 앞을 지나다 J 검사에게 전화를 했고 차나 한잔하자며 사무실에서 마주했다.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다 소재가 고갈됐다. 그러다 나이가 같고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다니 ‘족보’를 따졌다. 이 씨가 먼저 “D고교 출신”이라고 하자 J 검사가 깜짝 놀라며 “나도 D고를 나왔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 동기들 중에 ‘이민희’는 없었다. 반면 이 씨는 갑자기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따져보니 이 씨는 D고 2년 후배였고 나이를 속인 게 들통나게 됐다.

 이 씨가 “선배님 죄송합니다”라며 고개를 숙여 백배사죄한 뒤에야 J 검사의 화가 풀렸다. J 검사는 껄껄 웃으며 “똘똘한 D고 출신 하나가 대검에 있다”며 내선 전화를 중수부 검사실로 돌렸다. 이내 방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바로 홍만표 검사였다. J 검사, 홍 검사, 이 씨 순으로 1년씩 차이 나는 D고 선후배였다. 이때 피보다 진하다는 고교 선후배의 정을 확인한 홍 검사와 이 씨는 17년 뒤 연달아 구속됐다.

  ‘스폰서 검사’ 의혹에 휩싸인 김형준 부장검사 사건에선 B고교가 등장한다. 스폰서로 자처하며 김 검사의 비리를 폭로하고 나선 인물이 고교 동창 사업가인 김희석 씨(46·구속)다. 둘은 “친구야”라며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동문 간 끈끈함을 과시했다. 그러면서 한쪽에선 사건 청탁이, 다른 쪽으론 돈이 오고갔다.

 대우조선해양 사건에선 경남의 명문 K고교도 나왔다. 구속영장이 청구된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의 주요 혐의는 한성기업에 대한 특혜 대출 대가로 뇌물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회사의 임우근 회장은 강 전 행장과 고교 시절 같은 반 친구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공식처럼 등장하는 게 고교 동문이다. 학교 다닐 때 서로 알았든 몰랐든 사회에서 만나면 무장 해제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어려움이 있으면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정서 때문일 것이다.

 새로 취임하는 김정훈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친박(친박근혜)계가 민다는 잠재적 대선주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충주고 동문이다. 그래서 정치권에선 김 청장이 ‘경찰 2인자’ 자리에 앉은 배경을 놓고 뒷말들이 많다. 연말 연초면 일찌감치 대선 전초전이 시작된다. 각종 투서와 네거티브, 선거운동 관련 사건도 동시에 경찰과 검찰에 몰려들 것이다. 이땐 ‘고교 동문의 함정’에서 예외 케이스로 기록되길 바란다.
 
최우열 사회부 기자 dnsp@donga.com
#홍만표 변호사#스폰서 검사#고교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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