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만 2만건… 해마다 늘어
검경, 경미한 사건 형사처벌 않고 가정법원서 접근제한 등 처분받게
2013년 초 모바일 쇼핑몰을 운영하던 임모 씨(34)는 당시 여직원 장모 씨(22)와 눈이 맞았다. 부인과 갈라선 뒤 장 씨와 동거를 시작한 임 씨는 쇼핑몰 사업을 정리하고 치킨점을 열었는데 이번엔 이웃 가게 여주인과 친하게 지내 장 씨의 의심을 샀다. 둘의 사실혼 관계는 결국 장 씨가 빈 병으로 임 씨의 머리를 내리치고 임 씨가 주먹으로 맞서면서 파국을 맞았다. 법원은 임시조치로 임 씨와 장 씨에게 각각 접근금지 명령을 내리는 한편 별도의 상담기관에 40시간의 상담을 받으라는 처분도 했다.
예전 같으면 법원에까지 가지 않을 만한 가정폭력 사건들이 대거 사법부의 손으로 넘어가고 있다. 임 씨와 같은 사실혼 관계를 포함한 배우자, 또는 가족을 구타하거나 학대하는 가정폭력 사건이 법원에 접수된 사례가 지난해 2만 건을 넘어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법원행정처가 25일 발간한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법원에 접수된 ‘가정보호 사건’은 2만131건으로 전년(9489건) 대비 2배 이상이 됐다. 가정보호 사건은 부모와 자녀, 배우자 등 가족 사이에서 벌어진 가정폭력 범죄를 형사처벌하지 않는 대신 일정한 수준의 공권력 개입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법원에 송치해 가정법원이 접근 제한이나 보호관찰, 치료위탁 같은 보호처분을 결정하는 제도다.
지난해 법원에 접수된 가정폭력은 사실혼을 포함한 배우자 관계에서 일어난 것이 10명 중 9명꼴(87.6%)로 가장 많았고, 부모와 자녀 관계가 11.3%로 그 뒤를 이었다. 죄목별로는 상해·폭행(84.4%)이 압도적이었고 협박(8.0%), 재물손괴(6.4%) 순이었다.
가정보호 사건 접수가 급증한 것은 ‘가정폭력을 더 이상 개별 가정 탓으로 돌리지 않고 적극 나서겠다’는 경찰과 검찰, 법원의 의지가 반영된 현상으로 풀이된다.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 벌어진 폭력 범죄가 늘기도 했지만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면서 검찰 등 수사기관이 경미한 가정폭력 사건도 법원에 가정보호 사건으로 적극 송치하는 일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가정폭력 특성상 재범 가능성이 높아 수사기관에서 돌려보낼 경우 살인 등 더 큰 강력 범죄로 이어지는 일이 있어 사회적 관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돼 왔다. 법원 관계자는 “과거엔 가정폭력을 신고해도 경찰 입건조차 되지 않았지만 최근엔 검찰에서 넘어오는 사건 자체가 폭증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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