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 상징서 흉물 전락… 이젠 시민 산책로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8일 03시 00분


서울역고가도로의 어제와 오늘
1970년 서울의 심장 뚫은 ‘사건’ 90년대 “도시 미관 훼손” 애물단지
철거 대신 도심 공원 탈바꿈 진행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보행로 및 공원으로 변경될 예정인 서울역고가의 모습. 서울시 제공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보행로 및 공원으로 변경될 예정인 서울역고가의 모습. 서울시 제공
  ‘서울의 심장을 고속이 뚫었다.’

 1970년 8월 15일 동아일보는 서울역고가도로와 남산 1호 터널 개통을 보도하며 이 같은 제목을 달았다. 개통식에는 박정희 대통령 부부와 양택식 서울시장이 참석해 서울역고가도로가 국가적 관심사임을 나타냈다. 실제로 이 제목처럼 서울 도심에서 한강 이남으로 향하는 ‘장애물’이었던 서울역과 남산이 이날 ‘뚫렸다’. 흉물이라는 비난을 받다가 마침내 보행로로 전환하기로 결정된 지금 서울역고가의 상황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든다.

 개통 후 서울역고가는 사회·경제적으로뿐 아니라 문화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함의를 지니는 상징물이 됐다. 우선 다른 고가도로들처럼 폭증한 차량 통행을 원활하게 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와 함께 서울역 철로로 인해 단절된 도심 및 남대문시장 일대와 서울역 서쪽 일대를 잇는 연결로라는 독보적 지위도 가졌다. 만리동과 청파동 일대의 소규모 봉제공장과 남대문·동대문 시장을 잇는 ‘산업적 역할’을 톡톡히 했던 것이다.

 문화적으로는 서울의 근대화를 알리는 상징물로 기능하기도 했다. 완공 당시 신문들은 ‘서울의 새 명물’ ‘서울의 심장을 꿰뚫어’ 같은 뜨거운 찬사를 보낸 것이 그 예다. 별다른 시설물이 없던 서울역 일대에서 서울역고가는 두드러진 ‘인공미’를 뽐냈다. 정치적으로 보면 도심의 민주화운동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한 장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서울역고가의 위상은 조금씩 낮아졌다. 첫 번째 이유는 안전이다. 본보가 입수한 ‘서울역 7017 프로젝트 기초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시가 1984년 점검 결과 서울역고가의 상판 콘크리트와 2개 교각에 심각한 균열이 발생했다. 보고서는 이 시기를 “서울의 근대화 시설물이 더이상 도시문제의 해결책이 아닌 문제 자체가 되어가는 전환기”라고 분석했다.

 1995년에는 처음으로 철거 논의가 시작됐다. 안전 문제와 함께 ‘서울역고가가 차량 유입을 늘려 오히려 정체를 더 빚게 만든다’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당시 최병렬 서울시장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고한 ‘서울상징가로 및 국가중심가로 조성방안’에는 서울역고가의 철거와 철도 노선 용지 복개 등이 포함됐다. 이명박 시장과 오세훈 시장도 각각 서울역고가 철거를 검토하거나 발표했다. 2012년 안전점검에서는 사용 제한이 필요한 ‘D등급’을 받았다.

 박원순 시장이 제안해 시작된 ‘서울역 7017 프로젝트’는 기존에 논의된 철거 대신 보행로 및 공원으로서의 기능 전환을 택한 방식이다. 차량이 아닌 보행자가 서울역이라는 장애물을 극복하고 보행할 수 있는 새로운 기능을 부여한 셈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근대화#흉물#서울역고가도로.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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