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아동이 성년이 될 때까지 아동학대 범죄 공소시효를 정지하도록 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 특례법)’이 시행되기 전에 발생한 범죄에도 이 법을 소급 적용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로 2014년 9월 29일 아동학대 특례법 시행일 당시 피해 아동이 미성년자이면서 아동학대 범죄 공소시효인 7년이 완성되지 않은 범죄는 특례법을 적용해 처벌할 수 있게 됐다.
대법원 1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28일 친딸 2명을 이유 없이 학교에 보내지 않고 수년간 몽둥이로 때리는 등 학대한 혐의(아동복지법 위반)로 기소된 정모 씨(44·여)에 대해 징역 10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춘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정 씨는 2012년 6월부터 10월까지 초등학교 4학년과 5학년인 두 딸을 학교에 보내지 않은 혐의와 2008년 8월부터 2012년 겨울까지 수차례에 걸쳐 자녀들을 때리고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지난해 10월 검찰에 기소됐다. 1심은 정 씨의 학대 행위를 하나의 범죄로 보고 징역 10개월을 선고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형량은 유지하되 2008년 범죄 행위에 대해선 “범죄 행위가 끝난 때부터 7년이 지난 시점에 공소가 제기돼 공소시효가 완성됐다”며 일부 면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검찰은 정 씨 사건에 “아동학대 특례법상 공소시효 정지 조항을 적용해야 한다”며 상고했다.
아동학대 특례법 34조는 ‘피해 아동이 성년(민법상 만 19세)이 된 날부터 아동학대 범죄 공소시효를 진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성년 아동에 대한 학대 범죄를 공소시효가 완성됐다는 이유로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마련한 조항이다. 그러나 현행법상 아동학대 특례법이 시행되기 전에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도 소급 적용해 공소시효를 정지할 것인지는 명시적인 규정이 없는 상태였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아동학대 범죄 처벌 대상을 현재보다 폭넓게 보고 피해 아동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데 무게를 뒀다. 대법원은 “법이 시행된 당시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아동학대 범죄에 대해서도 적용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공소시효 정지 규정을 둔 법의 취지가 피해를 입은 아동을 실질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것임을 고려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대법원 관계자는 “공소시효 정지에 대해 개별법에 관한 소급 적용을 판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이 판결로 2007년 9월 30일부터 법 시행일 직전인 2014년 9월 28일까지의 아동학대 범죄는 소급 적용을 받아 처벌이 가능해졌다. 아동복지법에서 정한 공소시효 7년을 대입해 계산한 기간이다. 이 기간에 학대받은 미성년 아동이 성년이 될 때까지 아동학대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의 범죄 행위는 공소시효가 정지된다. 소급 적용을 받기 위해선 법 시행일 당시 피해 아동이 미성년이어야 한다는 요건도 갖춰야 한다. 시행일 당시 피해자가 이미 만 19세를 넘었다면 2007년 9월 30일부터 2014년 9월 28일 사이에 벌어진 아동학대 범죄는 특례법을 소급 적용해 처벌할 수 없다.
다만 아동학대 특례법 시행 이후 피해 아동이 성인이 됐다면 성인이 된 날로부터 공소시효가 다시 시작된다. 예를 들어 2010년 1월 12세 어린이에게 학대를 저지른 경우 공소시효는 해당 아동이 성년이 되는 2017년까지 정지된다. 2017년 이후부터는 범죄 종료일부터 2014년 법 시행일까지의 4년을 제외하고 남는 3년 안에서만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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