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주 이서카의 코넬대 공대에 다니는 브라이언 시프(20·정보과학과 3학년)는 택시 호출 서비스 앱 개발회사인 ‘레드루트’의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다. 13일 오후 이 학교의 창업센터인 ‘e허브’에서 만난 그는 회사 로고가 박힌 모자를 쓰고 있었다.
시프 CEO는 “이서카는 학생 2만 명, 지역주민 1만 명 등 인구 3만 명의 작은 도시여서 차량 공유 서비스인 ‘우버’를 이용하기 어렵다. 시장이 너무 작아 우버 택시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레드루트의 창업 아이디어는 그런 불편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엔 창업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비즈니스 시작하는 법’이란 제목으로 검색부터 해야 했다. 그런데 학교의 재학생 창업 교육 및 지원 프로그램인 창업실험실 ‘e랩’에 참여하게 되면서 창업의 A부터 Z까지, 모든 걸 배우게 됐다”고 했다.
e허브와 e랩은 ‘실리콘밸리의 스탠퍼드대’처럼 ‘뉴욕 스타트업의 요람’을 꿈꾸는 코넬대 공대 창업 시스템의 두 축이다. e랩이 소프트웨어라면, e허브는 하드웨어 격이다. 랜스 콜린스 공대 학장은 “기술과 창업 관련 석·박사 과정이 개설된 뉴욕 시 코넬 테크 캠퍼스(맨해튼 옆 루스벨트 섬)가 2017년 완공되면 뉴욕 시의 금융 미디어 정보기술(IT) 등 다양한 산업에서 근무하는 5만여 동문으로까지 코넬의 ‘창업생태계’가 획기적으로 확장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 ‘원스톱 종합 창업 서비스’ e랩의 위력
지난해 봄 시프 CEO와 공동창업자(동료 대학생) 2명은 ‘코넬의 우버를 만든다’는 비즈니스모델로 e랩 참가신청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심사 과정에서 e랩 디렉터들의 혹평을 받았다. 뉴욕 등에선 만 21세 미만 운전자는 상업용 차량을 운전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어 ‘대학생 우버 기사’ 아이디어는 법률 위반 소지가 컸다. 시프 CEO는 “그래서 이서카 지역 택시회사까지 연계하는 서비스로 사업계획을 바꾼 것”이라고 말했다. e랩 심사 과정부터가 단순한 옥석 가리기가 아니라 교육과 멘토링 서비스였던 셈이다.
기업인 출신인 e랩의 켄 로서 강사(57)는 “아무리 뛰어난 창업 아이디어라도 벤처투자자들에게 제대로 설명해 투자를 이끌어 내지 못하면 결국 실행될 수 없다. 그래서 투자 유치를 위한 프레젠테이션(PPT) 훈련까지 철저히 시킨다”고 말했다. e랩에서 초기 자금 5000달러(약 550만 원)를 제공하지만 추가 투자 유치는 각 팀의 능력에 달렸다. 레드루트는 뉴욕 월가까지 찾아가 총 10만 달러(약 1억1000만 원)의 자금을 유치했다.
로서 강사는 14일 오후 기자와 함께 학교에서 이서카 시내의 창업 관련 시설로 이동할 때 일부러 ‘레드루트’ 앱을 이용해 택시를 호출했다. 기사에게 “레드루트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불편한 사항이 무엇이냐”고 꼬치꼬치 물었다. 로서 강사는 마치 레드루트의 마케팅 팀 직원인 듯했다. 그는 “학생들이 밤잠 안 자고, 주말 시간을 희생하며 만든 기업이란 걸 잘 알기 때문에 이들의 성공을 최대한 돕고 싶은 마음에서 저절로 소비자 조사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 실패 및 중도 포기까지 대비하는 창업 교육
코넬 창업시스템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고 할 만큼 단계마다 특화된 창업 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코넬대 출신인 e랩의 자크 슐먼 총괄디렉터(51)는 “심지어 창업에 실패한 학생들이 새 도전을 하거나 진로를 바꿔 일반 기업 취업을 희망할 경우에도 최대한 도움을 주려 한다” 고 말했다.
기자는 코넬대 공대 교수나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창업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느냐”고 물었다. 학생들은 한결같이 “실패도 좋은 경험이 아니냐”고 대답했고 교수들은 “창업 교육이 오로지 창업에만 쓰이진 않는다. 다른 진로에도 실질적 도움이 되도록 가르친다”는 반응을 보였다. 박사과정 학생들이 자신의 전문적인 연구성과나 기술을 창업으로 연결지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상업화 펠로십’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이매뉴얼 지아넬리스 공대 교수는 “창업은 성공률이 낮을 수밖에 없고 모든 학생이 창업가가 될 수도 없다. 마케팅, 인사, 시장 조사, 지식재산권, 고객 개발, 공급망 관리, 투자자금 유치 등 다양하고 종합적인 교육은 창업이 아닌 대기업 취업에도 매우 유용하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어맨다 바레스(27·여·생의학 엔지니어링 전공)는 “창업 준비는 곧 ‘기꺼이 실패할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되는 과정”이라며 “만약 창업에 실패해도 연구나 취업 같은 다른 길로 나가는 데 아무 문제가 없어서 실패가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 코넬 창업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
코넬대 동문 창업가들의 넉넉한 후원도 든든한 힘이다. 선배들은 e랩의 멘토로 참여하고 창업에 관심 있는 후배들에게 인턴십 기회를 준다. 공대 내 별도의 창업 프로젝트팀에 참여하고 있는 켄 샤마 씨(21·기계공학과 4학년)는 “자동차 분야의 다양한 기술 개발을 시도하고 있는데 풀기 어려운 난관을 만날 때 가장 먼저 관련 업계에서 근무하는 코넬대 선배를 찾아 전화한다”고 했다.
돈 매퀼리엄스 공대 커뮤니케이션 담당 국장은 “창업 관련 학생과 교수, 재학생과 동문 간의 네트워크와 인적 데이터베이스(DB)가 어느 대학보다 체계적으로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최첨단 안테나기술 회사를 창업한 코넬대 공대 출신 데릭 에딩거 씨(44)는 “코넬의 창업 생태계가 워낙 견고하고 경쟁력이 있어 우리 회사처럼 학교가 있는 이서카에서 사무실을 내는 기업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랜스 콜린스 학장 “배움과 동시에 창업… 코넬의 DNA”▼
“전통적인 대학 교육은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배우고 또 배워서 (졸업 후) 세상에 나가서 그 지식을 실행한다’는 식입니다. 그러나 코넬대 공대는 무엇을 공부하든 ‘왜 이것을 배워야 하는지’를 먼저 생각하고 평가하게 합니다. 어디에 쓰일 수 있는 공부인지, 어떻게 실행할 수 있는지를 늘 함께 생각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공부한 내용을 토대로 창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졸업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지금 바로 학교에서 하라’고 합니다.”
13일 미국 뉴욕 이서카 코넬대 공대 집무실에서 만난 랜스 콜린스 학장(사진)에게 “코넬의 창업 프로그램은 어떤 특징이 있느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그는 “내가 코넬의 창업가 정신과 창업 문화에 자부심을 느끼는 이유는 배움과 실행을 동시에 진행하는 특유의 교육 방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콜린스 학장은 “세상에 큰 영향을 주고, 변화를 이끄는 창업가가 되고 싶다면 어떻게(how)라는 질문을 넘어서 왜(why)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답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주어진 문제에 대해 맞는 답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에만 집착하다 보면 더 중요한 질문인 ‘왜’에 대해선 아무런 생각을 못 하거나 안 하는 경우가 있다”며 “세상엔 맞는 답, 틀린 답이 따로 없는 복잡한 문제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왜 이 문제가 발생했고, 왜 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를 먼저 생각하지 않으면 해법을 찾지 못하고 길을 잃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창업가 양성의 하나로 리더십 교육도 강화하고 있다”고 했다. 그 이유에 대해선 “제3세계 국가의 식수 부족 현상을 해결하는 프로젝트를 한다고 할 때 그 문제가 공학도 한 명의 힘으로 풀리겠는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서로 논쟁하고 의논하며 함께 풀어야 한다. 그러려면 그런 사람들을 모아 팀을 만들고 그 팀을 관리하고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이 창업가에게 있어야 한다. 그래서 리더십 교육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도 미국 같은 창업 환경을 만들려면 어떻게 시작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창업을 격려하고 실수나 실패를 교훈으로 삼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보수적이고 위험 회피적인 학생들조차도 ‘성공 기회가 적더라도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한번 도전하고 시도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도록 창업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 실수하거나 실패해도 괜찮은 도전 기회를 많이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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