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는 힘 나와” 맨손으로 방범창 뜯고 이웃 구한 ‘의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9일 17시 11분


불길 속에 뛰어들어 초인종을 누르며 주민들을 대피시키다 숨을 거둔 안치범 씨, 아파트 화재 때 12층부터 1층까지 계단으로 내려오며 모든 현관문을 두드리며 위험을 알린 김경태 씨…. 이들처럼 위험을 무릅쓰고 이웃을 구한 의인(義人)이 또 있었다.

주인공은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거주하는 박대호 씨(32). 그는 23일 오후 9시 50분경 자신의 집에서 쉬다가 플라스틱이 타는 냄새를 맡고 불이 났음을 알아챘다. 박 씨의 집은 지상 3층 지하1층 연립주택의 1층에 있다.

그는 곧바로 119에 신고하고 부인과 함께 대피했다. 하지만 복도에 연기가 차기 시작한 걸 보고 발길을 돌렸다. 박 씨는 3층까지 올라가 내려오면서 집집마다 초인종을 눌러 거주자에게 불이 난 사실을 알렸다. 부인도 지하층으로 내려가 화재 사실을 알렸다.

이후 부부가 대피하던 중 갑자기 지하층의 창문에서 "아저씨 살려주세요, 저 여기 갇혀있어요"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박 씨가 지하층의 현관문을 보니 이미 불이 번지고 있어 진입이 불가능한 상황. 그는 침착하게 건물 외벽 창문의 방범창을 맨손으로 뜯어내고 여중생 A 양(14)과 그의 오빠(16)를 구조했다. 두 학생 모두 병원으로 이송됐고 다행히 큰 부상을 입지 않았다.

이 모든 일은 소방대가 도착하기 5분전에 진행됐다. 박 씨 부부의 발 빠른 구조 덕분에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생각하면 맨손으로 어떻게 방범창을 제거하고 학생들을 구조했는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아빠로서 자기도 모르는 힘이 발휘된 것 같다"며 "당연한 일을 했다"고 말했다.

이날 불은 A 양 남매가 거주하던 지하 1층의 한 방에서 일어나 약 500만 원의 재산피해를 냈다. 양천소방서는 30일 박 씨에게 감사의 뜻을 담은 서장 표창을 전달하기로 했다.

황태호기자 t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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