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7급 지방공무원의 공채시험 경쟁률은 122 대 1. 공무원시험(공시)의 인기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습니다. 내년 말 사법시험 폐지를 앞두고 응시생들이 더욱 몰리고 있습니다. 공시 학원가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청춘, 대학보다 9급 공무원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보기 전부터 공시 준비를 결심했어요. 비싼 등록금 내 가며 대학을 다니느니 일찍 공무원이 되는 게 낫죠. 공무원은 근무 연차가 쌓일수록 연봉이 딱딱 높아지잖아요. 일찍 합격하면 4년의 기회를 더 버는 거죠. 남들 다 가는 대학에 안 간다고 불안하지는 않아요. 공무원이 된 뒤에 대학 가면 되니까요.”―이슬기 양(18·경찰일반공채 준비생)
“굳이 대학에 가서 다른 공부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어요. 공무원시험 과목이 수능 과목과 비슷한 경우가 좀 있고요. 조금이라도 그 과목에 익숙할 때 공무원시험을 치르는 게 낫죠.”
―김모 씨(19·9급 일반행정 준비생)
“안정성 때문에 나이 어린 학생들까지 공무원시험에 뛰어들죠. 이제 좋은 대학, 좋은 스펙을 갖춘다고 무조건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게 아니고, 취직해도 정년까지 보장받기 어렵잖아요.”―신모 씨(40·한국사 강사)
“저는 민간기업에 다니고 있어요. 아들보다 몇 십 년 먼저 사회생활을 한 사람으로서 아들에게 공무원시험을 권했죠. 아들은 흔쾌히 받아들였어요. 일반 직장인들은 자신의 직업을 다른 사람에게 굳이 추천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공무원들은 자녀에게 선뜻 추천을 하더라고요.”―유지안 씨(47·주부)
“젊은 사람들이 공무원시험 시장에 들끓는다는 것은 분명 정상이 아니죠. 사회적 낭비로도 볼 수 있죠. 하지만 지원자들은 보고 듣고 배운 걸 바탕으로 선택하는 거예요. 안정성 하나로 모든 게 설명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학문 탐구보다 취업 준비를 우선시하는 대학 위상의 변화도 있고요. 이런 풍토라면 굳이 대학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노명우 씨(50·아주대 사회학과 교수)
마흔에 직장 등지고 공시의 길로
“전공을 살려 원하는 직장에 취업했죠. 하지만 팍팍한 사내문화와 고달픔으로 회의가 들었죠. 평생직장은 아니다 싶어 부모님의 만류에도 공무원 기숙학원에 왔어요.”―민모 씨 (27·9급 축산직 준비생)
“기업은 진급을 거듭할수록 살아남기가 힘들죠. 가족들 걱정할까 봐 집에는 다른 곳에 발령 났다고 거짓말하고 노량진에 와서 공부하고 있어요.”―최모 씨(35·9급 기술직 준비생)
“사회 전체로는 공시 열풍이 비합리적이지만 당사자로선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불안정한 기업 생활을 끝내고 안정적인 삶을 찾아 떠나는 거죠. 또 일에 대한 보상마저 공정하지 않은 문화를 떠나는 것이기도 해요.”―김영미 씨(43·A사립대 교수)
“중소기업에 다녔는데 신입사원들은 입사하자마자 이직을 준비하고, 과장급 직원들은 지루한 회사 생활을 반복했죠. 100세 시대잖아요. 공무원이 되면 얼마든지 제 꿈도 펼치고 자아실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안정적이고요. 공시 연령 제한도 폐지됐으니 마흔에 공무원 시험을 시작했죠.”―최기원 씨(41·7급 일반행정직 준비생)
체력 학원부터 스피치 학원까지
“경북 안동시에서 기숙학원을 운영해요. 음주, 휴대전화, 인터넷, 이성 교제를 금지하는 ‘4무(無)정책’을 실시해요. 여기까지 오는 학생들은 절실함이 있는데, 그걸 맞춰 주기 위한 통제죠.”―강명구 씨(48·김재규경찰공무원학원 부원장)
“최종 면접에서 떨어져 본 사람만이 그 기분 알죠. ‘목소리가 문제였나, 면접 태도가 문제였나’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어요. 그래서 아나운서 시험을 준비하듯 스피치 학원까지 다녀요.”―전용훈 씨(27·9급 일반행정 준비생)
“경찰을 준비하는 데 체력 학원에 다니고 있어요. 필기 합격자의 점수대가 촘촘해서 실기로 당락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아요. 운동을 꾸준히 했어도 체력을 실기 합격선까지 끌어올리려면 학원에서 체계적인 운동법을 배워야 할 것 같아요.”―이민우 씨(22·101경비단 준비생)
“인천에 살아서 노량진까지 가기 쉽지 않아 인터넷 강의를 들어요. 학원 앞자리에 앉으려고 일찍 가서 자리 경쟁까지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피곤하네요.”―이동영 씨(26·9급 교육행정 준비생)
학원가 수험생 유치 전쟁
“공시생들 사이에서 ‘프리미엄 독서실’이 인기예요. 안마 의자도 있고 편의점과 카페도 입점했죠. 일반 독서실보다 10만 원 비싸도 먹고, 쉬고, 공부까지 할 수 있어요.”―김모 씨(27·독서실 아르바이트생)
“노량진 고시원이나 빌라는 요즘 신축 및 리모델링을 해서 수험생 부모님들의 마음을 잡고 있어요. 요즘엔 어린 학생들까지 수험가에 들어오며 부모님들이 주거 환경에도 꽤 신경을 쓰거든요.”―한민구 씨(45·부동산중개업)
“노량진 고시촌엔 한 집 건너 한 집으로 카페가 있죠. 학생들의 눈길을 끌려면 이벤트가 필수예요. 영화나 공연 티켓을 주죠.”―박모 씨(37·카페 매니저)
“식당과 고시원, 독서실이 제휴를 맺고 있어요. 미리 계약된 고시원이나 독서실에서 온 학생들에게 쿠폰, 식권을 주거나 가격을 10% 할인해 주는 거죠. 근데 이런 식당들도 이제는 많으니 별로 차별화되지 않아요. 결국 음식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데, 다양한 학생의 입맛을 골고루 만족시키려면 자연스레 뷔페를 하게 되죠.”―임모 씨(47·고시뷔페식당 운영)
‘환급반’ ‘밥터디’로 돈 아껴
“한 달에 최소 75만 원을 써요. 방값 40만 원, 식비 20만 원에 학원에서 운영하는 관리형 자습실인 ‘스파르타’반에 15만 원을 내요. 조금이라도 아껴 보려고 학원에서 조교 아르바이트를 신청했어요. 시간을 뺏기긴 하지만 온라인 강의를 할인(10%) 받아요. 그게 어디에요.”―박민욱 씨(29·교정직 준비생)
“수험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 부모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요. 방값과 식비는 어쩔 수 없다 쳐도 독서실 비용(20만 원)은 아끼려고 카페에서 공부하기 시작했죠. 노량진 카페는 정말 싸거든요. 요새는 1500원짜리 커피를 시키고 반나절씩 공부하고 있어요.”―최모 씨(30·소방직 준비생)
“혼자 먹으면 외로우니까 같이 모여 밥도 먹고 정보를 공유하는 ‘밥터디’가 많아요. 저희는 돈을 아끼자는 목표가 뚜렷해요. 그래서 치킨이나 피자, 매운탕처럼 같이 시켜서 비용을 더 줄일 수 있는 음식을 먹죠.”―박모 씨(25·경찰직 준비생)
“새로 생긴 학원들은 광고 효과를 노리고 ‘환급반’을 만드는 경우가 있어요. 학원에 등록할 때에는 수강료를 전부 지불하고 합격하면 세금을 제외하고 전액 되돌려 받는 거죠. 당장의 생활비를 아끼는 건 아니지만 나중에 합격해서 그 돈을 돌려받아 부모님께 다시 안겨 드리고 싶네요.”―송희종 씨(27·9급 일반행정 준비생)
“고시 준비 학원은 엄청 많지만 정작 학원 자습실은 넉넉하지 않아요. 독서실을 다니자니 비용이 부담되고…. 고심하다가 노량진에서 가까운 장승배기역 근처의 도서관에 매일 다니고 있어요. 자전거 타고 도서관 가는 길에 운동도 절로 되고요. 노트북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요. 생활비 아끼기에는 도서관만 한 곳이 없는 것 같아요.”―김민우 씨(25·세무직 준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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