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전 제주-남부 할퀸 ‘차바’ 강풍-폭우에 4명 사망-3명 실종
현대차 울산공장 침수, KTX 중단… 늑장경보-허술한 대비로 큰 피해
예고된 태풍이었지만 이번에도 허술한 대비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18호 태풍 ‘차바(CHABA)’가 휩쓸고 간 제주와 부산 울산 경남 지역의 주택과 도로, 산업시설은 물 폭탄을 몰고 온 강력한 태풍에 맥없이 구겨졌다. 안일한 대책과 방심이 몰고 온 ‘인재(人災)’였다. 특히 현대자동차 울산 1, 2공장이 태풍으론 처음 침수됐고, KTX 신경주역∼울산역의 상·하행 열차 운행이 중단되는 등 국가의 주요 시설물이 피해를 입을 만큼 태풍 대비가 엉성했다.
5일 초고층 아파트가 밀집된 부산 해운대구 마린시티는 ‘함량 미달’의 방수벽 탓에 물바다로 변했다. 해운대구는 2012년 태풍에 대비해 기존 해안가 방파제 위로 방수벽을 설치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일부 주민들이 조망권 문제로 반발해 적정 높이(3.4m)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2m 높이로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해운대구가 작성한 사업타당성 보고서에는 2003년 파고가 7∼8m에 달했던 태풍 ‘매미’의 월파량을 기준으로 60%밖에 저감되는 효과가 없다고 명시했지만 사업은 그대로 강행됐다.
반경 250km 정도의 비교적 작은 태풍 규모에 적극적인 재해 위험 예고를 하지 않은 ‘방심’도 엿보인다. 울산 태화강 주변 저지대에 사는 주민들은 ‘늑장 경보’ 탓에 큰 낭패를 봤다. 낙동강홍수통제소는 이날 태화강 홍수주의보를 발령한 지 50분 만에 수위가 1m 이상 오르자 경보로 격상했다. 강 인근 아파트 주차장에 미리 대피시킬 수 있었던 자동차 수백 대도 침수 피해를 입었다. 울산 울주군 언양읍 반천현대아파트 주민 A 씨(46)는 “태화강변에 건립된 아파트여서 폭우가 쏟아질 경우 피해가 예견된 상황이었지만 당국의 경고가 없어 차를 대피시키지 못했다”고 말했다.
보강 공사가 끝난 지 3년이 안 된 부산 감천항 방파제는 추가로 쌓은 구조물의 80%가 무너지면서 부실 시공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해 준공된 다대포항 방파제도 길이 300m 가운데 100m가량이 파손돼 관리당국이 조사에 나섰다.
이번 태풍으로 전국에서 4명이 숨지고 3명이 실종됐다(5일 오후 11시 기준). 전국에서 차량 980여 대가 침수됐고 어선 1척이 전복됐다. 정전 피해는 22만6945가구에서 발생했고 도로 55곳이 한때 통제됐다. 항공편은 국제선 4편, 국내선 63개 항로 등 총 120편이 결항했다. 정부는 부산 경남 지역의 피해 복구를 지원하기 위해 특별재해대책지구 지정을 검토하고 있다.
전찬기 한국재난정보학회장(인천대 도시건설공학과 교수)은 “대형 재난이 예상될 때 즉각 대비 태세가 가동돼야 하는 시스템이 이번에도 거의 먹통이었다”며 “재난 상황에서는 대응 매뉴얼이 실제 가동되는지가 핵심인데 재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