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찾아오셔도 해드릴 수 있는 얘기가 별로 없을 겁니다. 특정 매체에만 정보를 제공하면 ‘김영란법’ 위반이 될 수 있거든요.”
최근 취재를 하기 위해 금융위원회 국장급 공무원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이런 얘길 들었다. 그는 “보도자료와 관련된 내용 이상은 언급할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보도자료는 기자들에게 공평하게 제공한 정보이니 괜찮지만, 새로운 정보(뉴스)를 특정 매체에 제공하면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농담으로 생각하고 웃어넘겼다. 다른 부처를 취재하는 과정에서는 전혀 들어보지 못한 얘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에도 앵무새처럼 김영란법 핑계를 대는 금융위 공무원들을 여럿 만났다. 금융위는 또 국민권익위원회에 ‘기자에게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내용을 말해주는 것이 김영란법 위반이냐’는 내용의 질의까지 해놓은 상태다. 금융위는 특정 언론사 기자에게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김영란법에서 부정 청탁으로 금지하고 있는 ‘직무상 비밀을 누설하는 행위’나 ‘공공기관이 생산하는 용역을 특정 개인·단체·법인에 정상적인 거래 관행에서 벗어나 사용하도록 하는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권익위의 공식 답변이 나오기 전까지는 기자들의 개별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는 기류도 감지된다.
언론·출판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한 권리다. 만약 금융위 공무원들의 해석처럼 언론의 취재 활동이 김영란법에 저촉된다면 언론은 제대로 된 기능을 할 수 없다. 언론은 정부의 나팔수에 그치고, 국민의 알 권리는 훼손될 수밖에 없다. 보도자료만 받아 쓴다면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민주당 선거 사무실을 도청했다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폭로한 1974년 워싱턴포스트의 보도나 1987년 서울대생 박종철 씨가 고문을 당해 사망한 사실을 알린 동아일보의 보도처럼 권력을 감시하고 시대의 물줄기를 바꾼 언론 보도는 불가능해진다.
금융위의 질의에 대해 권익위는 아직까지 공식 회신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권익위 고위 관계자는 5일 동아일보 기자의 취재에 응하면서 “언론의 본질적 임무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것”이라며 “언론에 제공하는 정보가 형법에서 정의하는 ‘비밀 누설’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부정청탁법 적용 대상으로 보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말 속엔 김영란법이 금지하는 ‘용역 제공’은 병원 진료 순서를 앞당겨 주는 일 등을 의미하는 것이며 언론 취재 응대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금융위는 대표적 규제 산업인 금융 정책을 총괄한다. 어떤 부처보다도 언론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정책을 알리고 국민의 이해를 구해야 할 곳이다. 정상적인 언론 취재 활동과 부정 청탁조차 분간하지 못하는 수준이라면 안타까울 따름이다. 김영란법 해석 논란을 핑계로 제 몸 숨기기에 바쁜 금융위 공무원의 보신주의가 좋은 취지의 김영란법을 괴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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