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만 있으면 OK” 미대-인문대 출신에도 창업 기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3일 03시 00분


[청년이 희망이다]창업가 키우는 글로벌 공대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 시 카네기멜런대 잔디광장 ‘더 컷(the Cut)’에 들어서자 아찔한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하늘로 우뚝 솟은 30m의 대형 철제 기둥 위를 실물 크기의 사람 3명이 걸어 올라가는 대형 조형물 ‘하늘을 향해 걷는 사람들(Walking to the sky)’이다. 서울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 앞의 ‘망치질하는 남자(Hammering man)’로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이 대학 건축학과 출신 설치미술가 조너선 보로프스키의 작품이다.

 2006년 설치 당시 힐러리 로빈슨 미술대 학장은 위험을 무릅쓰고 하늘로 향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가능성의 무한함을 믿고 더 높은 곳을 향해 야심 차게 도전하는’ 카네기멜런대의 정신을 읽었다고 설명했다. 보여 주기 위한 랜드 마크가 아니라 누구나 거리낌 없이 혁신에 도전하는 카네기멜런대 특유의 문화에 보내는 작가의 헌사였던 셈이다.

○ 다른 학교 학생과의 협업도 환영

카네기멜런대 인큐베이터 ‘프로젝트 올림푸스’ 사무실에서 창업에 도전하는 학생들이 각자의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행사 ‘테크 피치 나이트(Tech Pitch Night)’가 진행되고 있다. 카네기멜런대 제공
카네기멜런대 인큐베이터 ‘프로젝트 올림푸스’ 사무실에서 창업에 도전하는 학생들이 각자의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행사 ‘테크 피치 나이트(Tech Pitch Night)’가 진행되고 있다. 카네기멜런대 제공
 캠퍼스 인근 주택가에 위치한 카네기멜런대 창업보육기관(인큐베이터) ‘프로젝트 올림푸스’는 ‘하늘을 향해 걷는 사람들’이 실제로 활동하는 곳이다.

 “이건 케일, 저건 실랜트로(고수)예요. 총 30종의 야채를 실내에서 로봇이 물을 주며 키우고 있습니다. 먹어 보세요.” 경영대학원 출신 오스틴 웹 씨(28)는 태양이 아닌 붉은 LED 조명 아래서 빽빽하게 자라고 있는 실랜트로 한 줄기를 뽑아 권했다. 프로젝트 올림푸스 사무실에 차려진 자동화 수직 농법 스타트업 ‘로보타니’의 실험 공간이다.

 웹 씨는 로보타니의 최고경영자(CEO), 경영대 동문 대니얼 심 씨(31)가 최고운영책임자(COO)이다. 뜻밖에도 로보타니의 최고기술경영자(CTO)인 오스틴 로렌스 씨(26)는 노스웨스턴대 로봇공학과 출신이라고 했다. 창업 성공을 위해 수직농법 스타트업 창업 경험이 있는 다른 학교 졸업생과 팀을 꾸린 것이다.

 이 독특한 조합은 “공동 창업자 중 카네기멜런대 출신이 한 명만 있으면 타교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누구나 카네기멜런대 창업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는 프로젝트 올림푸스의 열린 정책 덕분에 가능했다. 올 5월 창업한 로보타니는 프로젝트 올림푸스에서 5000달러(약 560만 원)의 소규모 투자를 얻었고 수차례 외부 투자 제안도 받았다. 프로젝트 올림푸스에 상주하며 학생들과 상담하고 아이디어를 평가하는 킷 니드햄 부소장은 “인근 피츠버그대 출신은 물론 듀크대 출신도 카네기멜런대 학생과 팀을 꾸려 창업에 도전하는 경우를 봤다”고 설명했다. 

○ 인문학과, 연극영화과 학생까지 창업 도전장

카네기멜런대 인큐베이터(창업보육기관) ‘프로젝트 올림푸스’ 사무실에 설치된 자동화 수직 농법 스타트업 ‘로보타니’의 실험실. 케일, 셀러리, 실랜트로 등 약 30종의 식물이 태양열 없이 붉은 LED 조명과 물을 주는 로봇의 관리를 받으며 자라고 있다. 피츠버그=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카네기멜런대 인큐베이터(창업보육기관) ‘프로젝트 올림푸스’ 사무실에 설치된 자동화 수직 농법 스타트업 ‘로보타니’의 실험실. 케일, 셀러리, 실랜트로 등 약 30종의 식물이 태양열 없이 붉은 LED 조명과 물을 주는 로봇의 관리를 받으며 자라고 있다. 피츠버그=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카네기멜런대의 모체는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가 피츠버그 노동자들에게 기술을 가르치려고 1900년 세운 카네기기술학교다. 인문대를 포함한 4년제 종합대가 된 것은 1967년이다. 이처럼 실용주의 정신이 관통하는 카네기멜런대에서 창업 도전자는 공대생에 국한되지 않는다.

 “구체적인 사업 계획은 나중 얘기다. 일단 아이디어부터 들고 오라”고 장려하는 프로젝트 올림푸스를 찾은 학생은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713명이나 된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전공은 공대(25.1%)와 컴퓨터공대(26.8%) 출신이지만 미대(40명·5.6%)와 인문대(54명·7.6%) 출신도 꾸준히 창업에 도전하고 있다. 비(非)이공계 출신으로 대박을 터뜨린 대표적 인물은 사진 보정 앱 ‘탄젠트’의 스콧 시코라 씨(34)다. 그는 2012년 미술대학원에서 인터랙션디자인 석사 학위를 받고 이듬해 선보여 내려받기 100만 회를 돌파한 탄젠트로 애플이 선정한 ‘올해 최고의 앱’의 영예를 안았다.

 카네기멜런대 슈워츠기업가센터가 학부생을 대상으로 12주 스타트업 인턴십 및 실리콘밸리 체험 기회를 주는 ‘이노베이션 스칼러’ 프로그램도 다양성을 중시한다. 2014년부터 3년간 24명이 뽑혔는데 그중 4명이 문예창작, 산업디자인, 연극영화과 출신이다.

○ 카네기멜런+피츠버그의 싼 물가=저비용 고효율 창업

 “스타트업에 현금은 왕이다. 물가와 임대료가 싼 피츠버그만큼 창업에 우호적인 곳도 없다.”

 의료용 웨어러블 기기 스타트업 ‘리스트콜’을 차린 지 3년이 돼 가는 컴퓨터공학대학원 출신 스리낫 바데팔리 씨(31)는 창업 기지로서의 카네기멜런대의 장점으로 입지 조건을 꼽았다. 카네기멜런대의 우수한 기술력, 인력, 투자 환경이 피츠버그의 낮은 물가와 결합되면 저비용 고효율 창업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CNN머니에 따르면 실리콘밸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피츠버그로 이주하는 순간 식비는 21%, 의료비는 19%, 주거비는 70%가 줄어든다.

 슈워츠기업가센터 공동 소장인 조너선 케이건 기계공학과 교수는 “피츠버그에선 고급 인력을 합리적인 비용으로 고용하는 등 경제적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동시에 질 높은 삶도 영위할 수 있다. 실리콘밸리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이 점이 카네기멜런대를 창업 도전자들이 매력적으로 느끼게 만든다”고 자랑했다.

피츠버그=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카네기멜런대#더 컷#the cut#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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