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10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부고속도로 언양 갈림목에서의 관광버스 화재사고를 계기로 비상망치와 소화기 등의 위치, 사용 방법을 모니터나 방송을 통해 안내하도록 의무화하는 법령을 내년 1분기에 시행하겠다고 했다. 사고 당시 출입문이 막히는 바람에 창문을 깨고 탈출해야 했는데 비상망치를 찾지 못해 대형 참사로 이어졌기에 망치에 형광테이프를 붙여 눈에 띄기 쉽게 하는 조치도 마련했다. 연말까지 버스 천장과 바닥에 비상해치 설치도 의무화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2년 전에도 운전기사가 출발 전에 승객들에게 비상망치와 소화기의 위치 및 사용법 등의 안내 방송을 하도록 조치하겠다고 했다. 운전기사들이 승객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생각을 갖도록 명찰이 붙은 제복을 입도록 했다. 어기면 과징금이나 과태료를 물리겠다고 했지만 별로 달라진 건 없다. 언양 사고버스 운전기사는 사고 전후에 비상망치 위치를 알려주기는커녕 먼저 탈출하기에 바빴다. 행정처분을 법령으로 바꾼다고 뭐가 달라질지 의문이다. 어이없는 참사 후에야 사후약방문 식 대책을 내놓는 정부가 미덥지 않다.
7월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 입구에서 5중 추돌사고를 일으킨 관광버스 운전기사는 2014년 음주운전으로 세 번째 적발돼 면허가 취소됐다. 언양 사고 운전기사도 음주·무면허사고 등 12건의 교통 전과가 있다. 작년에 면허가 취소된 버스 운전기사 548명 중 408명이 사고나 교통법규 위반 경력이 있는 부적격자였다. 이런 운전기사들이 모는 대형버스를 타는 것은 흉기에 목숨을 내맡기는 것과 다름없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 뒤 고속·전세버스 안전대책을 내놓았고 봉평터널 사고 직후에는 운전기사가 4시간 연속 운전하면 최소 30분 쉬도록 보장하겠다고 했다. 큰 사고가 터질 때마다 응급 땜질대책을 내놓기보다 선제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2년 전부터 입석 금지로 수도권 광역버스 뒷문을 없앤 뒤 좌석을 늘려 출입구가 앞문 하나로 줄었는데도 비상망치 위치를 아는 승객은 손에 꼽을 정도다. 정부가 단단히 정신을 차려야겠지만 승객들의 안전의식도 높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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