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관 뚜껑이 닫히자… 가족들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22일 03시 00분


[토요판 커버스토리/아름다운 마침표 ‘웰다잉’]한국의 죽음체험 프로그램

6일 서울 영등포구 효원힐링센터에서 ‘임종체험’ 참가자들이 수의를 입은 채 관에 들어가 있다(위쪽 사진). 참가자들은 입관 전 
자신의 영정 사진을 보며 가상의 유언장을 작성하고 죽음 관련 동영상을 시청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6일 서울 영등포구 효원힐링센터에서 ‘임종체험’ 참가자들이 수의를 입은 채 관에 들어가 있다(위쪽 사진). 참가자들은 입관 전 자신의 영정 사진을 보며 가상의 유언장을 작성하고 죽음 관련 동영상을 시청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어머니 아버지를 만나 행복했습니다. 저 때문에 포기하셨던 것들 이제는 마음껏 누리며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청년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목소리는 떨렸고 여러 차례 말문이 막혔다. 그는 마치 죽음을 앞둔 듯 ‘마지막’이란 단어를 되뇌었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앳된 얼굴의 청년은 그렇게 가족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고마워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영중로 효원힐링센터 강당. 이른 아침부터 이유를 알 수 없는 울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불 꺼진 강당에 모여 앉은 40여 명의 사람은 놀랍게도 입관 전 시신에 입히는 모시 수의(壽衣)를 입고 있었다.

 
이들 앞에는 검은 띠를 두른 각자의 영정 사진과 빈 유언장이 놓여 있었다. 주저하지 않고 인적사항을 적어 내려가던 사람들은 시신 매장 방법과 기증 여부를 묻는 칸에서 펜을 멈췄다. 유언장과 허공을 번갈아 바라보던 사람들은 마치 오늘 죽는 사람처럼 굳은 표정으로 한숨을 쉬며 유언장을 써 내려갔다. 적막을 깨는 흐느낌이 여기저기서 들렸고 시간이 흐를수록 눈물을 훔친 휴지가 곳곳에 쌓여 갔다.

 10여 분 뒤 사람들은 차례로 자신이 쓴 유언장을 읽기 시작했다. 한 여성은 “엄마 아빠 오빠” 고작 여섯 글자를 읽고는 목이 메어 한동안 흐느꼈다.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지만 유언장 속에 그려진 등장인물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모와 다른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절반이었고 감사의 마음이 나머지 절반을 채웠다.

 “이제 시간이 다 됐습니다. 관 뚜껑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유언장 낭독이 끝나자 사회자는 ‘입관(入棺)’을 지시했다. 아직 할 말이 남았는지 잠시 머뭇거리던 사람들은 왼쪽에 놓인 관 안으로 스스로 들어가 몸을 뉘었다. 곧 관 뚜껑이 하나씩 닫히기 시작했다. 무겁고 둔탁한 소리가 강당 안에 울려 퍼졌다.

 기자도 수의를 입고 관 안으로 들어갔다. 관 뚜껑이 닫히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비좁은 공간에 갇혔다는 답답함을 느낄 새도 없이 지난 일들이 하나씩 머리를 스쳐 갔다. ‘인생을 더 즐기지 못한 아쉬움’보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머릿속을 채웠다. 그렇게 10여 분간 후회와 반성의 시간이 되풀이됐다.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란 노랫말과 함께 뚜껑이 열리면서 작은 빛줄기가 관 속으로 들어왔고 시원한 바람도 느껴졌다. 고작 10여 분을 관 속에 있었을 뿐인데 사소한 것에 반가웠고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날 강당에서 벌어진 풍경은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고 장례의식을 경험하는 ‘임종체험 프로그램’의 한 장면이다. 눈물 젖은 유언장을 쓰고 관 안으로 들어간 이들은 한 대학 신입생들이다. 영정용 사진을 촬영할 때만 해도 친구들과 셀카를 찍으며 장난치기 바빴지만, 체험 후 이들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프로그램에 참가한 학생들은 대부분 ‘죽음’을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이지수 씨(19·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죽음을 떠올렸다”며 “진지하게 나를 돌아보며 현재 내 삶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죽음 앞에서 ‘평범함’에 감사하는 사람들 

 최근 ‘웰다잉(well-dying)’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죽음을 체험하며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참가자 10명 중 7명은 20, 30대일 정도로 젊은 체험자들이 몰리고 있다. 정용문 효원힐링센터장은 “죽음을 금기시하는 분위기 때문에 3, 4년 전만 해도 참가자가 많지 않았다”며 “최근 죽음을 체험하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려는 젊은층까지 늘면서 한 달에 300∼400명 가까이 센터를 찾는다”고 말했다. 

  ‘웰다잉 프로그램’은 주로 상조회사와 공공장묘시설 등 장례 관련 기관에서 진행한다. 서울시 산하 서울시설공단에서 진행 중인 ‘웰다잉 투어’는 인문학과 삶 종교 등 3가지 주제를 죽음과 연결한 웰다잉 프로그램이다. 주제별로 김수영문학관, 북촌 한옥마을 등을 둘러보거나 정동교회 길상사 등 종교시설을 견학한 뒤 묘지를 방문하는 일정이다. 공단은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에 ‘웰다잉 복합 체험관’ 건립도 추진 중이다. 체험관에는 입관 체험실, 영상 회고록 녹화실, 자기 삶 기록실 등 죽음을 체험할 수 있는 시설들이 들어설 예정이다.

 웰다잉 프로그램은 다가올 죽음을 미리 준비한다는 성격이지만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새 삶을 다짐하는 의미가 더욱 크다. 정 센터장은 “알코올의존증 증세를 보이던 한 참가자는 임종 체험 후 술을 끊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약속했다”며 “남은 인생을 좀 더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사람들이 죽음을 체험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강승현 byhuman@donga.com·유원모 기자
#웰다잉#죽음#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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