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래구 명륜동 주민 강모 씨(43)는 태풍 ‘차바’가 온 마을을 할퀸 날을 잊지 못한다. 24일 만난 강 씨는 “설마 했는데 또 빗물이 방 안까지 들이닥쳤다”며 진저리를 쳤다. 강 씨는 2년 전 집중호우 때도 집이 침수돼 냉장고, 소파 등 가재도구들을 버려야 했다. 그의 둘째 딸(7)의 5일자 그림 일기장에는 ‘집에 물이 들어와 언니, 엄마와 수건으로 물을 닦았어요’라고 쓰여 있었다. 이 가족이 사는 집은 지은 지 53년 된 단독주택이다.
10년 전 이사 온 강 씨는 낡은 집을 고치려 했지만 곧 마을이 재개발된다는 얘기를 듣고 참기로 했다. 주민들은 노후 주택이 많아 재정비가 시급하다고 의견을 모았고 2005년부터 ‘명륜 6구역 주택개발사업’을 시작했다. 2007년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지정돼 300여 채의 개발이 끝나기 전까지 매매를 제외한 건물 개·증축 등은 하지 못하게 됐다.
주민들은 지난해 7월 사업이 부산시 건축심의위원회를 통과하면서 기대에 부풀었다. ‘4만1900여 m² 터에 지상 22∼48층 아파트 7개 동, 850여 채 규모의 아파트를 신축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석 달 뒤 관할 동래구청에 낸 사업승인 신청은 지금까지 통과되지 못한 상태다.
학교 문제가 걸림돌이었다. 동래구는 부산시교육청 동래교육지원청에 주변 교육시설의 학생 수용 가능 여부를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명륜2초등학교(가칭) 신설을 추진하고 있던 동래교육지원청은 “(재개발로) 늘어나는 초등학생을 명륜2초교에 배치해야 한다”고 답했다. 동래교육지원청은 앞서 2014년부터 세 차례나 교육부에 명륜2초교 신설 안건을 상정했지만 허가받지 못했던 터라 동래구는 이 같은 답변으로는 사업을 승인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교 신설은 인근 학교 현황, 개발 상황 등을 전체적으로 보고 판단한다”며 “이 재개발 구역 부근에는 초등학교가 여러 개 있기 때문에 통학구역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학교 신설을 재검토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명륜6구역에서 반경 1.5km 내에는 명륜초교, 교동초교, 내성초교 등 3개의 초등학교가 있다.
학교 신설을 바랐지만 번번이 좌절되자 포기하고 재개발이라도 하루속히 이뤄지기를 기대했던 주민들은 이마저 벽에 부딪히자 들끓고 있다. 하지만 동래교육지원청은 12월 이 안건을 다시 상정할 계획이다. 동래교육지원청 측은 “아파트 사업지 통학권에 있는 초등학교는 이미 과밀화돼 추가 증설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통학 안전을 위해 해당 사업 용지에 반드시 학교를 신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를 새로 만들지 않으면 해당 아파트 학생들의 통학거리가 길어져 민원이 속출할 게 뻔하다는 논리다.
주민들은 급기야 집단행동에 나섰다. 1081명 공동 명의로 교육부와 부산시교육청 등에 진정서를 제출한 데 이어 19일부터는 100여 명이 거리 집회도 벌이고 있다. 감사원 감사청구는 물론이고 담당 공무원들을 직권 남용 등으로 고소하기 위한 법적 절차도 밟고 있다. 주민들은 “교육청의 막무가내식 행정에 더 이상 우리의 행복추구권을 침해받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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