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정의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핵심은 자신이 공부한 만큼 입시에서 실력을 평가받을 수 있느냐의 문제다. 입학전형이 복잡할수록, 주관성이 많이 개입될수록 입시 정의와 거리가 멀어지는 것은 분명하다.
현재 수시와 정시 비율은 7 대 3 정도로 갈수록 수시전형이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수시전형의 확대는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입시 결과에 대한 객관성 문제와 정부의 정책지원금에 눈이 먼 대학들의 무비판적인 수용이다. 급기야 정치권에서까지 지나친 수시 확대를 자제하도록 권고하고 나섰다.
객관성 문제는 더 이상 거론하지 않아도 누구나 잘 아는 바다. 성적보다는 다른 요소들에 의해 당락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수시전형을 생각하는 학생들은 늘 바쁘게 움직인다. 무엇이라도 입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이것도 저것도 준비해야 한다. 억지춘향으로 만들어내는 스펙들로 어떻게든 학교생활기록부를 화려하게 장식해야 한다. 서울의 강남, 서초구 내 26개교를 조사한 결과(동아일보 19일자 A1·14면)에 따르면 수시 입시 때까지 평균 2037개의 상을 남발했다. 교내 수상 실적은 학생부에 기재돼 수시전형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화려하게 포장된 학생부를 놓고 객관성을 검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와 같은 평가가 된다.
대학들의 무비판적인 수용도 문제다. 대학 입장에서는 정부의 정책지원금을 무시할 수 없다. 우선 먹기는 곶감이 좋다고 수십억 원씩 지급하는 정책지원금을 받기 위해 수시전형을 확대한다.
입시에서도 갈수록 용이 나기 어렵다고 말한다. 원래 이 말은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좋은 학교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으나 지금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수시전형이 확대되면서 스펙을 쌓을 수 없는 아이들이 용이 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개천에서 용이 쉽게 나오도록 의도했던 수시정책이 오히려 용이 나지 못하게 만드는 이상한 제도로 전락하고 있다.
수시는 수시 나름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특정 분야에서 발군의 능력을 나타내는 아이들이 있고 넘치는 끼를 가진 아이들도 있다. 이런 아이들은 수시전형이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는 수시전형이 지나치게 확대됐다는 것이다. 입시 정의의 문제는 간단하다. 자신이 공부한 만큼 입시에서도 그대로 반영돼야 하는 것이 정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