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과 SNS로 투명사회 가속화
낯선 친구 행적도 알려지고 사실호도, 사생활침해 우려도
위기를 기회로 삼는 저력 국민에게 있다
우리는 지금 좋아하든 싫어하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투명사회(transparent society)’를 향해 가고 있다. 그 배경에 촘촘함과 치밀함을 더해 가고 있는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자리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제 ‘글로벌리제이션’의 시대는 가고 ‘구글리제이션’의 시대가 왔다고 외치는 구글의 자신감이, 근거 없는 허풍은 아니란 사실이 실감 나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하기야 지식과 정보를 검색에 의존하는 신세대의 변을 들어보면, 연예인이나 유명인은 기본이고 누구라도 ‘신상 털기’가 가능함은 물론이고 한 번이라도 만난 적 있는 남친과 여친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남김 없이 추적이 가능하다지 않는가. 이런 세상이고 보니 너나없이 감출 수도 숨길 수도 없는 투명사회 앞에 노출되고 있음이 분명한 듯하다.
단, 이들 투명사회는 양날의 칼을 지닌 실체이자 빛과 그림자의 두 얼굴을 동시에 갖고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투명사회에선 모든 정보가 낱낱이 공개되고 누구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는가 하면, 원할 경우엔 정보의 생산 및 유통 또한 거의 무한대로 가능하다.
투명사회가 순기능을 발휘하는 경우에는 성숙한 신뢰사회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은 희소식이다. 예전엔 별다른 죄책감 없이 관행으로 자리 잡아 왔던 전문가 집단의 표절 시비, 중상류층의 위장 전입 및 탈세 의혹, 나아가 사회 지도층 자녀들의 병역 비리 등이 더 이상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범죄로 인식되기 시작한 건 투명사회의 순기능이 한몫한 결과라 할 것이다.
반면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진위가 확인되지 않는 정보들이 넘쳐나고, 개인의 사생활 및 인권 차원에서 보호받아 마땅한 정보들이 적나라하게 노출되는가 하면,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까발리기’가 만연하게 된다면, 투명사회는 천박하고 미성숙한 ‘폭로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게 될 것이다.
최근 대한민국을 강타한 ‘최순실 게이트’ 속에선 투명사회의 두 얼굴이 적나라하게 충돌하고 있는 듯하다. 투명사회가 아니었다면 부정부패의 고리가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채 국민의 시선으로부터 사라졌을 것이다. 권력은 자신의 권력을 숨길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했거늘, 투명사회가 아니었다면 쉽게 자신의 실체를 숨긴 채 부정부패의 천문학적 열매를 고스란히 거두는 쾌거(?)를 이루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가 하면 투명사회의 역설과 역기능이 긍정적이고도 생산적인 기능을 압도하는 모습도 빈번하게 관찰된다. 진실의 이름으로 부풀려지고 과장되고 왜곡되는 정보가 넘쳐나는가 하면, SNS를 타고 허위 정보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가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선의의 피해자가 양산되기도 하고 누군가는 무고한 희생자가 되기도 한다.
지금부터라도 선정적 폭로와 무책임한 비방이 야기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최순실 게이트’의 본질이 무엇인지 치밀하게 진단하고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부정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는 작업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이후엔 재발 방지책을 포함하여 신속한 수습 및 확실한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것이 현명하리란 생각이다.
행여라도 당리당략에 따라 이해득실만 따지는 근시안적 행태를 반복하는 정치권이라면, 투명사회에선 국민의 지지도 정당한 명분도 확보하지 못할 것이요, 시청률이나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연연하여 사실을 호도하거나 진실을 외면하는 데 익숙한 미디어라면, 투명사회에선 공공의 적으로 부상할 것이 확실하다.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국민의 잠재력이자 저력이라 했다. 이번 사태 앞에서도 위기를 증폭시키며 사분오열되기보다는, 중지를 모아 문제를 수습하고 해결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모두를 위한 윈윈(win-win) 전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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