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아 그늘 벗어나자”… 핀란드 창업붐 이끄는 ‘디자인팩토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3일 03시 00분


[청년이 희망이다]창업가 키우는 글로벌 공대

 ‘몰락한 노키아의 빈자리를 작은 창업 기업들이 채운다.’

알토대는 헬싱키공대(1849년 설립), 헬싱키예술디자인대(1871년), 헬싱키경제대(1904년)  3개 대학이 통합해 2010년 
출범했다. 6개 단과대학 가운데 경영대와 예술대를 뺀 4개가 이공대학이다. 공학 경영 디자인 등을 융합한 창의적인 교육 과정이 
많기로 유명하다. 학부 과정은 핀란드어, 석사 이상의 과정은 주로 영어로 가르친다.
알토대는 헬싱키공대(1849년 설립), 헬싱키예술디자인대(1871년), 헬싱키경제대(1904년) 3개 대학이 통합해 2010년 출범했다. 6개 단과대학 가운데 경영대와 예술대를 뺀 4개가 이공대학이다. 공학 경영 디자인 등을 융합한 창의적인 교육 과정이 많기로 유명하다. 학부 과정은 핀란드어, 석사 이상의 과정은 주로 영어로 가르친다.
 중국 상하이 출신 멜리사 웡 씨(25·여)는 올 4월 자본금 2만5000유로(약 3100만 원)로 핀란드 에스포에 인테리어 소품 회사 ‘칸사니(Kanssani)’를 세웠다. 사무실은 따로 없다. 학교 창업 동아리에서 경험이 많은 50대 핀란드인을 동업자로 만났을 뿐이다. 알토대에서 디자인경영 전공 석사과정을 밟는 웡 씨는 “학교 창업 동아리에서 컨설팅까지 받았다. 북유럽 디자인 제품을 중국에서 생산해 온라인으로 전 세계에 판매하면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핀란드는 웡 씨 같은 외국인 유학생에게도 기업 설립을 적극 장려할 정도로 창업 분위기 확산에 열심이다. 규제를 없앴고 노동시장 개혁까지 추진하고 있다. 법인세율은 26%에서 2014년 20%까지 내렸다.

○ ‘핀란드 패러독스’ 탈출 해법은 창업

 핀란드의 경제 상황은 좋지 않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다. 국제신용평가회사 피치의 자회사인 BMI리서치에 따르면 핀란드의 경제성장률은 향후 10년 동안 1% 안팎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1997∼2007년만 해도 연평균 성장률이 4%였다.

 핀란드의 몰락은 노키아의 추락 때문이다.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40%를 장악했던 노키아는 핀란드 국내총생산(GDP)의 24%를 담당했다. ‘노키아=핀란드’였다. 노키아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으면서 핀란드 경제도 수렁에 빠졌다. 노키아는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에 휴대전화 부문을 팔았다.

 대기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경제구조는 위험했다. 핀란드는 이미 정보통신기술(ICT)에서 최고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밀라 에로넨 알토대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는 “고도의 ICT 기술력을 기업의 수익 창출로 연결하지 못하는 ‘핀란드 패러독스’가 발생했다”며 “이후 대학들이 창업 교육을 통해 기술을 수익으로 창출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 만들며 배우는 디자인팩토리

알토대 디자인팩토리 실습실에서 한 학생이 시제품을 만들고 있다. 절삭공구, 3차원(3D) 프린터, 선반 등을 갖춘 실습실은 24시간 365일 학생들에게 개방된다. 에스포=이유종 기자 pen@donga.com
알토대 디자인팩토리 실습실에서 한 학생이 시제품을 만들고 있다. 절삭공구, 3차원(3D) 프린터, 선반 등을 갖춘 실습실은 24시간 365일 학생들에게 개방된다. 에스포=이유종 기자 pen@donga.com
 옛 헬싱키공대가 모태(母胎)인 알토대는 기술 융합형 제품 개발을 돕는 정규 교과 과정인 디자인팩토리(Design Factory)로 유명하다. 디자인팩토리에선 공학 디자인 경영학 등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한 학기, 또는 두 학기 동안 제품 개발과 디자인 경영 등 40여 개의 학과를 뛰어넘는 융합강좌를 선택해 이수한다.

 수업은 대부분 실습으로 이뤄진다. 3, 4번 정도 강의를 듣고 나머지 시간엔 5∼10명이 한 팀을 이뤄 제품과 서비스 개발에 매달린다. 교수는 학생들의 질문에 답하거나 조언해줄 뿐이다. ‘실천을 통한 배움(learning by doing)’이 알토대의 학풍이다. 티나 툴로스 디자인팩토리 프로젝트 매니저는 “학생들은 기업, 공공기관, 비영리단체가 제안한 제품을 개발하거나 환경오염 등 지구상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고안해낸다”며 “과정을 마친 뒤 결과물을 토대로 창업하는 학생도 많다”고 설명했다.

 디자인팩토리 실습실은 말 그대로 창업 공장이었다. 이곳은 9월 방학 중임에도 실습실에 있는 절삭공구와 3차원(3D) 프린터 등으로 시제품을 개발하는 학생이 많았다. 회의실에선 학생들의 토론이 한창이었다. 실습실은 24시간 365일 학생들에게 개방된다. 기계설계 전공인 빌레 쿠코리데스 씨(23)는 “스웨덴 대학생들과 팀을 꾸려 습도 측정 기기를 개발했다. 스웨덴 학생들이 소프트웨어를, 핀란드 학생들은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방식”이라며 “졸업 후 막연히 대기업에 입사하고 싶었는데, 직접 제품을 개발해보니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 10월 13일은 ‘실패의 날’

알토대의 창업동아리 알토이에스가 주최한 창업 행사에서 학생들이 기업인과 변호사들의 현장 경험을 듣고 있다. 알토대 학생들은 컨설팅이나 투자자 유치 등 창업에 필요한 업무를 동아리를 만들어 스스로 해결한다. 알토이에스 제공
알토대의 창업동아리 알토이에스가 주최한 창업 행사에서 학생들이 기업인과 변호사들의 현장 경험을 듣고 있다. 알토대 학생들은 컨설팅이나 투자자 유치 등 창업에 필요한 업무를 동아리를 만들어 스스로 해결한다. 알토이에스 제공
 알토대에는 알토이에스(AaltoES), 스타트업사우나(Startup Sauna), 슬러시 등 학생들이 주도하는 다양한 창업 동아리가 학생들의 창업을 돕는다. 알토이에스는 외부 재단의 도움을 받아 대형 창업행사를 연다. 스타트업사우나는 학생들을 기업인들과 연결해 무료 창업 컨설팅을 받도록 돕는다. 슬러시는 학생과 투자자를 연결해주는 동아리다. 카스퍼 수오말라이넨 스타트업사우나 대표(경영학 석사과정)는 “노키아의 몰락 이후 대학에도 창업 붐이 일었다”며 “핀란드는 더 이상 노키아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알토이에스는 실패에 관대한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2010년부터 매년 10월 13일에는 ‘실패의 날(Day for Failure)’ 행사를 개최한다. 유명 기업인들이 학교에 와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실패 경험을 소개하고 실패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털어놓는다. 2011년에는 요르마 올릴라 노키아 명예회장이 여기서 실패 경험을 공개해 화제가 됐다. 핀란드 국민 550만 명 중 4분의 1이 신문 방송 인터넷을 통해 행사를 지켜봤다. ‘실패의 날’ 행사는 세계 각국으로 전파돼 올해는 영국 독일 캐나다 스웨덴 등 30개 국가에서 열렸다. 

 칼레 아이로 알토대 벤처프로그램 매니저는 “노키아 몰락 이전까지 핀란드 사람들은 실패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며 “하지만 성공은 여러 실패의 경험이 모여서 이뤄진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디자인팩토리’ 만든 칼레비 에크만 기계공학과 교수 “창의성 키우려 일단 토론하라 가르쳐”▼
 
 ‘디자인팩토리’라는 대박 프로그램을 만든 이는 칼레비 에크만 알토대 기계공학과 교수(사진)다. 20년 전인 1997년 자신의 제품 개발 관련 수업을 확대해 디자인팩토리를 만들었다. 해마다 1200여 명이 참여하는 인기 강좌다. 연세대를 비롯해 미국 필라델피아대, 라트비아 리가공대 등 10여 개 대학에서도 디자인팩토리를 운영하고 있다.

 알토대는 학교본부가 단과대학에 예산을 나눠주고 단과대는 교육 성과가 뛰어난 교수에게 예산을 할당한다. 에크만 교수는 대학 공간을 빌려 대학에서 받아낸 예산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교육 성과가 없으면 디자인팩토리도 문을 닫아야 한다. 철저하게 경쟁 구조로 운영되는 알토대에서 디자인팩토리 자체가 대표적인 창업 성공 사례인 것이다.

 에크만 교수는 “창업의 핵심은 창의성”이라며 “창의성 향상을 위해 학문 간 융합과 다양한 문화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영 디자인 엔지니어링 과학이 모두 실용과 연관돼 있습니다. 소비자의 경험이나 습관을 이해하는 데 철학과 심리학 같은 학문도 매우 유용하지요. 다양한 전공을 배우는 학생들이 서로 토론하고 함께 작업하다 보면 제품 디자인의 핵심을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자신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에크만 교수는 창의성 개발의 가장 큰 걸림돌로 비판 문화의 부재를 꼽았다. 그는 “일반 기업의 사무실에선 좀처럼 말하지 않는다”며 “브레인스토밍을 할 때도 제대로 비판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들에게서 비난받을까 봐 그렇다. 이런 문화가 창의성을 죽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핀란드에선 어릴 때부터 말하기 전에 생각하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우린 강의실에서 생각하기 전에 말하라고 해요. 대기업 인턴십 과정에선 시키는 것만 해야 합니다. 사내 정치를 배울 순 있어도 자신의 가능성을 가늠할 순 없습니다. 여기선 모든 걸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경험하고 실패하도록 기회를 줍니다.”

에스포=이유종 기자 pen@donga.com
 
●알토대 디자인팩토리 현황

 
교과과정: 제품 개발, 디자인, 경영 등 40여 개 교과목
수강생: 연간 1200명 (학부 17%, 석사과정 78%, 기타 5%)
수강생 전공: 기계 28%, 자연과학 17%, 경영 17%, 예술 17%, 전기 12%, 화공 5%, 기타 4%
교수진: 35명
연구원: 20명
직원: 25명
협력 기업: 30개 이상
 
#핀란드 알토대#노키아#디자인팩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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