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서울 강동구의 한 ‘인형뽑기방’. 고등학생 김모 양(18)이 인형뽑기 기계를 붙잡고 있는 친구를 재촉했다. ‘후라이’는 요즘 청소년 사이에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다.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의 이모티콘인 ‘후드티를 입은 라이언(RYAN)’을 줄인 말이다. 유명해진 덕분에 이곳에 설치된 인형뽑기 기계 18대 가운데 절반가량이 후라이 인형으로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이 인형은 모두 불법 복제품, 이른바 ‘짝퉁’이다.
엽기토끼 ‘마시마로’와 ‘뿌까’ 등 1세대 국산 캐릭터의 뒤를 이어 정보기술(IT)을 바탕으로 개발된 새로운 캐릭터가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종류를 가리지 않는 짝퉁 공세에 밀려 마시마로처럼 결국 고사(枯死)의 길을 밟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마시마로는 짝퉁 제품 때문에 10여 년 전 약 100억 원의 손실을 내고 사실상 국내에서 자취를 감췄다.
최근 대학가와 유흥가 등을 중심으로 급속히 늘어나는 인형뽑기방은 짝퉁 캐릭터 제품의 대표적인 유통 창구다. 보통 10대 안팎의 기계를 갖춘 인형뽑기방은 최근 복고 바람을 타고 곳곳에 문을 열고 있다. 문제는 이곳에서 취급하는 인형의 대부분이 보따리상 등을 거쳐 중국에서 들어온 값싼 불법 복제품이라는 것이다. 국산 캐릭터뿐 아니라 헬로키티, 보노보노, 토토로 등 해외 캐릭터 제품도 대부분 짝퉁이다.
최근에는 레고 같은 유명한 블록 제품도 짝퉁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 실시한 7차례의 집중 단속 결과 불법 복제 블록 제품이 6차례나 적발됐다. 짝퉁 제품은 정품에 비해 디자인과 봉제 등 마감 상태가 조잡하지만 적잖은 소비자들은 짝퉁 제품을 사는 데 거리낌이 없다. 그저 값만 싸면 상관없다는 것이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곽상도 의원이 문체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8월까지 적발된 짝퉁 캐릭터 제품은 3만2737개에 이른다. 한국문화콘텐츠라이센싱협회에 따르면 국내 캐릭터 불법 복제품의 유통 규모는 전체 시장의 20%인 1조5781억 원(2014년 기준)에 이른다. 하지만 실제 규모는 4조 원대 이상이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그러나 단속 인력은 문체부 산하 저작권 특별사법경찰 25명, 저작권보호센터 20명이 전부다. 이들이 전국의 모든 저작권 침해 사례를 단속하고 있다. 김시범 안동대 한국문화산업전문대학원 교수는 “법과 단속이 미비한 틈을 타 불법 캐릭터 시장이 확산되고 있다. 과거 불법 음원 유통으로 가수들이 피해를 보자 팬들이 정식 음원을 구매하며 자정(自淨) 노력을 벌인 것처럼 캐릭터 시장에도 소비자들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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