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새벽 산행을 갔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등산로 초입에서 교복을 입은 여학생 6명이 한 줄로 서서 “아픈 아이들을 외면하지 마세요. 후원으로 사랑을 표현하세요”라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꽤 이른 시간이라 지나가는 사람이 거의 없는 썰렁한 등산로에서 아이들은 민망한지 몸을 배배 꼬며 휴대전화를 들었다 놨다 얼굴을 가리느라 난리였다. 반대편 평상에는 교대조로 보이는 한 무리의 학생들이 입에 김밥을 하나씩 물고 앉아 있었다. 담당자로 보이는 한 어른은 아이들 뒤에 숨어 크게 말해야 한다며 채근하고 있었고, 아이들은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똑같은 문구를 기계처럼 되뇌었다.
며칠 전에는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옆에서 팻말을 들고 있는 한 남학생을 보았다. 출구 방향을 안내하는 팻말이었는데 사실 아이가 서 있는 곳은 올라가는 길이 하나뿐이라 안내할 필요가 없는 곳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로 올라가며 무의미한 곳에 우두커니 서 있는 아이를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아이는 자신도 왜 그곳에 서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불만 섞인 얼굴을 가리기 위해 팻말을 치켜들었다.
사실 이 학생들은 모두 자원해서 봉사활동을 하는 중이었다. 교육청의 봉사활동 운영계획을 보면 매년 20시간 정도의 봉사시간을 학생들에게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봉사활동은 대학입시 수시전형 중 학생부종합전형과 논술전형 등에 활용된다. 올해 대학 신입생 10명 중 7명은 수시로 뽑고 서울대는 이들 전부를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뽑는다. 1점이 아쉬운 학생들에게 교육청의 권장은 곧 강제가 된다.
이런 상황은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자원봉사를 해온 한 친구는 “너는 봉사활동으로 대학 가려는 거야?”라는 말 때문에 상처받은 적이 많다고 했다. 또한 바쁜 학생들에게 4시간 봉사시간을 받을 수 있는 헌혈이 인기를 끌며 대한민국 전체 헌혈자의 36%를 학생들이 채우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봉사활동을 방학에 몰아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무래도 양질의 자리가 부족하다 보니 단순 반복적인 활동 위주로 참가하게 되어 만족도가 낮아진다. 보건복지부의 조사에 따르면 봉사활동 참여율은 중고교생 때 70%를 넘었다가 20대가 되는 순간 10%로 뚝 떨어진다. 왜곡된 봉사활동으로 인한 부정적 경험이 오히려 봉사활동과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사실 자원봉사는 이웃과 내가 사는 곳을 아끼는 마음에서 생겨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집과 학교, 학원의 뺑뺑이에 갇혀 우리 마을에 누가 사는지,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알기 어렵다. 이 때문에 마을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시민사회 일원으로서의 역할도 못하고 있다. 공동체 안에 있어야 공동체 의식이 생기고, 시민들이 협력하는 모습을 봐야 나눔 문화가 생길 것 아닌가. 평소에는 딴짓 말고 책상에만 앉아 있으라 하면서 봉사활동 때만 되면 있지도 않은 공동체 의식과 나눔 문화를 발견하라고 하니 학생들 입장에서는 답답할 노릇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광장에서 교복을 입고 플래카드를 든 달뜬 얼굴의 청소년들을 보았다. 무언가를 해야만 해서, 내가 배운 나라는 이게 아니라며 뛰쳐나왔다는 이들은 누가 나가라고 해서 나오지도 않았고, 애써 얼굴을 감추지도 않았다. 내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외치고 있는지 알고 있는 아이들, 우리가 보고 싶었던 아이들의 얼굴은 이런 얼굴이 아니었을까?
지금이라도 대학입시와 연계한 자원봉사 점수 제도를 없애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차라리 아이들이 동네 골목에서 놀며, 광장에서 배우고, 시장에서 성장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럴 때에야 만사 제쳐 두고 공동체를 위해 발 벗고 나설 아이들이 많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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