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본부세관의 박종수 계장이 16일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서 파트너인 마약탐지견 ‘패기’와 함께 중국 창춘에서 들어온 수하물을 검사하고 있다. 마약을 탐지할 때는 보통 관세청 직원 2명과 탐지견 1마리가 팀을 이룬다. 마약 탐지견과 직원 1명이 현장을 조사할 때 나머지 직원 1명은 당황하거나 수상쩍은 기색을 보이는 여행객이 없는지 주변을 살핀다. 인천=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16일 오후 3시 반 인천국제공항 입국장. 중국 창춘(長春) 공항에서 들어온 아시아나 OZ304편 탑승객들이 짐을 찾기 위해 하나둘씩 수하물 컨베이어 벨트 앞으로 모여들었다. 비행시간은 2시간 남짓이었지만 여행객들의 얼굴에선 피곤한 기색이 짙게 배어났다.
그때 새카만 ‘불청객’이 총총걸음으로 나타났다. 그는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돌고 있는 짐 가방들을 빠른 걸음으로 따라잡으며 ‘킁킁’ 냄새를 맡았다. 벨트 주위에 서 있는 여행객에게 다가가 코를 들이대기도 했다. 사람들은 호기심 섞인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주인공은 마약탐지견 ‘패기’였다. 캐나다산 래브라도 레트리버 종인 검정개는 매끄러운 짧은 털에 큰 귀를 가졌다. 탐지견 핸들러(handler)인 박종수 관세청 계장은 냄새가 잘 배어 나오도록 손으로 가방들을 눌러가며 컨베이어 벨트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패기는 마약류의 냄새를 맡으면 바로 그 자리에 앉도록 훈련받았다. 다행히 패기가 바닥에 앉을 일은 없었다.
지난해에는 일주일에 1건 빈도(총 49건)로 공항에서 마약이 발견됐다. 올해는 적발 건수가 9월까지 51건으로 훨씬 늘어났다. 올해 6월 관세청은 창춘에서 들어오는 탈북자 출신 한국 국적자의 가방에서 메스암페타민(일명 필로폰)을 찾아냈다. 남성 1명, 여성 2명으로 이뤄진 일당은 시가 45억 원 상당의 필로폰 1.5kg을 들여오려다 관세청의 휴대품 검사에 걸렸다. 무려 5만 명이 투약할 수 있는 양이었다. 박종필 인천본부세관 마약조사과 계장은 “사전에 첩보를 입수한 덕에 피의자들을 적발할 수 있었다. 최근 중국에서 마약을 들여오는 새터민과 조선족이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마약청정국’은 이제 옛말
한때 한국은 ‘마약청정국’으로 불렸다. 그러나 지난해 그 지위를 잃었다. 유엔은 ‘인구 10만 명당 마약사범 수가 20명 미만’인 나라를 마약청정국으로 분류한다. 대검찰청이 최근 발표한 ‘2015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마약사범은 사상 최대인 1만1916명으로 집계됐다. 인구 10만 명당 23명이다. 올해 9월까지의 마약사범 수는 1만609명으로 이미 1만 명을 넘어섰다.
관세청은 공항과 항만 등 ‘최전선’에서 해외 마약류의 국내 밀수를 차단하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최근 5년간 관세청이 적발한 마약 밀반입 건수와 규모는 가파르게 증가했다. 지난해 마약 밀반입 적발 건수(325건)는 2011년(174건)의 2배 가까이로 늘었다. 적발된 마약류의 규모도 사상 최대였다. 관세청이 지난해 압수한 마약류 총중량은 91.6kg, 시가로 환산하면 2140억 원어치에 이른다. 2011년 적발 마약은 총 29.3kg, 620억 원어치였다.
지난해 관세청이 압수한 필로폰은 총 72.0kg이었다. 240만 명이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박 계장은 “특히 지난해 5월부터 항공여행자를 통한 필로폰 소량 밀수가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건당 20g 이하의 소량 밀수는 2014년 27건에서 지난해 49건으로 81% 늘었다.
밀수 경로도 다양해졌다. 예전에는 중국이나 동남아로부터 국내에 필로폰을 밀반입하거나 한국을 통해 일본 등지로 밀수하는 케이스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아프리카(케냐, 남아공)→아랍에미리트 또는 독일→한국→미국 루트의 카트(북아프리카산 식물성 마약류) 밀수 △캐나다→한국→대만 루트의 대마초 밀수가 처음 적발되기도 했다.
미성년자와 20대 마약사범이 해마다 크게 늘어난 점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2011년 41명에 불과했던 미성년자 마약사범은 지난해 3배 이상인 128명으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20대 마약사범은 750명에서 1305명으로 늘었다. 배경학 인천본부세관 마약조사과 계장은 “예전에는 마약류에 대한 국민적인 거부감이 강했는데, 요즘 들어 쉽게 유학과 여행을 경험하는 젊은층의 경계심이 특히 약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주사기를 사용하지 않고 마약을 삼키거나 들이마시는 등 투약 방법이 간편해진 것도 마약사범 확산의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마약 우표 만들고 공구 안에도 넣어
마약류를 숨겨 들여오는 수법도 갈수록 지능화하고 있다. 지난해 3월에는 인천공항에서 캐나다 국적 여행자가 우표 모양의 신종 마약류 ‘25I-NBOMe’를 몰래 들여오다 국내 최초로 적발됐다. 이 마약은 물에 녹인 후 종이에 흡수시킬 수 있다. 종이를 말리면 전혀 표가 나지 않는다. 피의자는 개인용 노트 사이에 607장의 마약 우표를 숨겨 들여왔지만 마약견의 코를 속이진 못했다. 25I-NBOMe는 환각과 환청, 이상고열 및 심장박동 증가를 유발하고 심하면 복용자가 사망할 수도 있다.
인천공항 입국장에서는 올해 9월에도 시가 200억 원 상당의 코카인 6.4kg을 몰래 들여오려던 사람이 적발됐다. 피의자는 남미 콜롬비아를 경유해 인천에 도착한 60대 후반의 미국인이었다. 그는 두루마리 형태로 둘둘 말린 팩스용지 안쪽에 마약을 숨겼다. 수하물 X선 판독을 꼼꼼히 하지 않으면 쉽게 찾아낼 수 없는 교묘한 수법이었다. 박 계장은 “브라질, 콜롬비아를 거쳐 온 피의자의 최종 목적지는 홍콩이었는데, 마약 운반책들은 환승객의 수하물을 제대로 살피지 않는 관행을 노린다”고 말했다.
마약류를 몸속에 숨기는 것은 ‘고전적인 수법’에 속하지만 아직도 흔하게 쓰인다. 올해 4월 중국 난징(南京)에서 인천공항으로 들어온 40세 조선족 남성의 가방에서는 주사기와 소형 전자저울, 은박지 등 마약 투약도구가 발견됐지만 마약류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몸 수색 결과 항문에서 콘돔에 넣은 필로폰 70g이 발견됐다. 관세청 관계자는 “예전에는 마약류를 삼키는 방법이 이용됐지만 위에서 콘돔 등 포장재가 터져 죽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면서 요즘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태국, 필리핀, 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에서 국제우편과 특송화물을 통해 필로폰을 밀반입하려는 시도가 증가하고 있다. 관세청은 올해 9월 국제특송화물을 X선으로 판독하다 공업용 고정도구인 바이스(vice) 안에 들어 있는 필로폰을 찾아냈다. 관세청 담당자는 강철 바이스를 그라인더(회전 숫돌로 금속을 깎는 기계)로 잘라낸 뒤에야 필로폰을 꺼낼 수 있었다. 올해 4월에는 배트맨 모형의 다리 부분에 고정된 빨대에서 필로폰과 대마가 발견됐다.
지난해 적발된 마약 중에는 필로폰이 72.0kg으로 가장 많았고, 대마(12.1kg)와 합성대마(6.0kg)가 그 뒤를 이었다. 하지만 마약의 종류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마약류는 ‘약물 사용에 대한 욕구가 강제적일 정도로 강하고, 사용 약물의 양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으며, 금단현상 등이 나타나고, 개인에 한정되지 않고 사회에도 해를 끼치는 약물’로 규정돼 있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천연마약, 합성마약, 향정신성의약품, 대마류 등으로 구분되는 352개 물질을 마약류로 지정하고 있지만 신종 마약은 갈수록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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