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진 대구시장은 18일 열린 간부회의에서 “우리 스스로의 두려움을 극복해야 하며 기득권에 안주하지 말고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5년, 10년 뒤를 내다보면서 대구의 변화와 혁신이라는 새로운 길을 찾아가자”고 강조했다.
권 시장의 이 말은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시국 상황을 생각한 고뇌 어린 심정으로 느껴진다. 대구는 박 대통령 탄생의 주역이라는 자부심이 높았지만 지금은 부끄러움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 대구’라는 수식어가 이제 자랑이 아니라 창피해지는 상황에서 대구에 대한 신뢰마저 땅에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권 시장이 “스스로의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 점도 이런 맥락에 닿아 있는 것 같다. 시장으로서 대구가 전반적으로 기가 죽고 움츠러들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걱정으로 들린다.
두려움은 의지를 다진다고 해서 저절로 사라지는 게 아니다. 현실을 직시하면서 냉정하게 대응할 수 있을 때 극복될 수 있다. 대구가 두려움을 이겨내고 미래를 발전적으로 열기 위해서는 ‘단절과 실력’의 자세를 명확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단절해야 할 것을 단절하지 못하면 미래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시급히 단절해야 할 측면은 ‘대통령의 도시’라는 허세일 것이다. 대구에는 “대통령을 여러 명 배출한 대통령의 도시”라는 생각이 깊이 박혀 있다. ‘배출’의 뜻은 간단하지 않지만 경북까지 포함해 지금까지 대통령을 5명 배출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러나 재임 중이든 퇴임 후든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받지 못하면 대통령을 수십 명 배출해도 의미가 없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도시를 강조하면서 “대통령을 이렇게 많이 배출했으니 대구는 특혜를 받아야 한다”는 식의 보상 심리가 적지 않았다. 지금은 이런 시대가 아닌데도 “대통령으로 만들어 줬는데 대구에 뭘 해줬나” 하는 섭섭한 감정을 드러내 왔다. 대통령은 국민이 만드는 것이지 대구만의 역할은 아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국가물산업클러스터를 비롯해 현대중공업 로봇사업부, 전기상용차 완성차 공장, 쿠팡 물류센터 등 최근 대구에 들어서는 국책사업과 기업 유치는 이전과는 다른 측면이 있다. 대구시가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성취한 실력의 결과이다. 간부를 중심으로 지역의 과제를 국책사업으로 끌어올리는 실력을 발휘하고 기업 유치를 위해 절박하게 뛴 정직한 성과이다. 대통령의 도시라는 허황한 인식이 안겨준 공짜가 아니다.
대구가 ‘실력 최우선’이라는 가치를 공유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새로운 인식도 중요하다. 권영진 시장은 시민의 사랑을 받는 매력적인 리더가 되도록 절실한 노력을 쏟아야 한다. 시민들도 권 시장의 단체장 경험이 국가 지도자로 성장하는 디딤돌이 되도록 응원할 필요가 있다. 광역지자체는 정부의 축소판이므로 단체장 경험은 매우 소중하다. 멀리 내다보면서 하나씩 실력을 쌓는 겸손하고 개방적인 자세야말로 대구의 미래를 열어가는 진정한 에너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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