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악기장 박경호 씨는 고향인 전북 부안군 동진면 봉황리에서 농사를 지으며 현악기를 만든다. 바이올린과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농사꾼이던 아버지는 짚이나 나무로 공예품을 맵시 있게 만들었다. 어린 시절에도 목수이던 동네 아저씨 집에서 맡는 나무 냄새가 좋았다.
인근 김제로 고등학교를 갔지만 학업에는 별 뜻이 없었다. 졸업 후 어머니가 쥐여준 단 돈 3만 원을 들고 서울로 가 2년 동안 복장학원을 다니며 양장 일을 배웠다. 의류회사에서 백화점 영업 일을 하다 디자인을 맡아 제법 인정도 받았다. 디자이너로 독립해 성공 궤도를 달리는가 했는데 외환위기를 맞았다.
그의 악기는 값이 싸지 않다. 개당 1000만 원을 넘는다. 2000만 원이 넘는 것도 있다. 그러나 제작 과정을 알고 나면 비싸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10년 이상 마른 유럽산 전나무와 발칸반도산 단풍나무를 수입해 와 석 달가량 깎고 다듬는다. 칠하는 데 2, 3개월, 말리는 데 1년, 그 뒤 두벌 칠해서 줄을 걸기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한다. 나무를 깎은 뒤 곧바로 색을 칠하지 않는다. 연장질로 잔뜩 움츠러들었던 나무가 이리저리 뒤틀리며 긴장을 풀고 본연의 모습을 잡아가는 시간을 주는 것이다. 활까지 한 개의 악기를 완성하는 데 길게는 2년이 걸린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악기의 뒤틀림이 없고 소릿값의 변화가 없으려면 그 정도는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한꺼번에 여러 개의 악기를 동시에 만들지도 못한다.
‘팔지도 못할 것을 뭣하러 만드느냐’는 말을 자주 듣는다. 생활은 아내가 꾸리지만 가장으로서 책임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다. “어렵긴 하지만 팔리는 만큼만 만들면 좋은 악기를 만들 수 없죠. 마음을 비운 지 오랩니다.” 그는 지금도 새로운 모형과 새로운 소리를 찾는 일에 관심이 많다.
그는 사람 부자다. 오스트리아까지 악기를 메고 간 악기원정대도 있지만 악기 일에만 전념하라고 그의 텃밭 일을 대신 해주는 후배도 있고 나무를 놓고 가는 사람도 있다. 그는 악기장이 나이를 먹으면 악기 소리도 나이를 먹기 때문에 앞으로 몇 년 동안 악기 제작에만 전념할 생각이라고 무심한 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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