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만 모범음식점… 맛-서비스 뭐가 달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23일 03시 00분


시민들 ‘27년된 제도’ 불만 목소리

 이달 초 대기업에 취업한 한모 씨(28)는 최근 취업을 축하해 주려는 가족들과 한 식당을 찾았다. 정문에 ‘모범음식점’ 표지판이 붙어 있는 대형 고깃집이었다. 그러나 식사 내내 짜증만 내다 결국 음식을 남긴 채 나와야 했다. 한 씨는 “사람 수대로 주문하지 않았다고 종업원이 핀잔을 주고 야채는 오래돼 말라 있었다”며 “모범음식점이라면 다른 식당보다 나을 줄 알았는데 다를 게 없다. 돈만 낭비한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우수한 식당을 소비자에게 알린다는 취지로 도입된 모범음식점 제도가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모범음식점이 식당 선택의 가장 중요한 기준인 맛과 서비스 등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22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모범음식점은 식당의 시설 및 위생 수준을 개선하기 위해 1989년 도입됐다. 시행 초기에는 엄격한 심사 기준과 홍보 효과 등으로 인해 음식점들이 경쟁을 벌일 만큼 신뢰도가 높았다. 모범음식점에 지정되면 운영자금 우선 융자와 위생 검사 면제, 지방자치단체 홍보물에 소개되는 등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모범음식점에 지정되려면 음식 전문가와 공무원 등으로 구성된 음식문화개선운동추진위원회 등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업소 내 위생 상태 평가와 원재료 관리 현황, 서비스 친절도 등이 평가 대상이다. 심사는 공개된 현장 방문평가와 시설 점검 등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정 유효 기간은 2년. 이 기간이 끝나면 다시 심사를 받아 재지정을 받거나 탈락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 식당 평가·안내서인 미쉐린(미슐랭) 가이드처럼 암행평가 방식이 아니어서 정확한 평가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 6월 현재 3927개의 모범음식점이 지정돼 있다. 서울시내 25개 자치구마다 평균 150개가 넘는 모범음식점이 있는 셈이다. 한 자치구 관계자는 “일부 상권에만 모범음식점 지정이 집중돼 있으면 다른 지역 상인들이 반발하기 때문에 선정할 때 이를 감안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모범음식점 지정 후 지자체에서 사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부실을 키운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시의 경우 최근 5년간 매년 평균 4000여 개의 식당이 모범음식점으로 지정되고 있지만 취소된 경우는 2012년 15곳, 2013년 23곳, 2014년 19곳에 불과했다. 올해는 6월까지 6곳만 취소 처분을 받았다.

 이로 인해 모범음식점에 지정된 식당 중 식품위생법을 위반한 경우가 수백 건에 달하는 등 불량 음식점이 속출하고 있다. 2011년 전국적으로 479곳의 모범음식점이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행정당국에 적발됐고 2012년 333곳, 2013년 585곳, 2014년 543곳 등 수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연택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블로거와 음식 관련 방송 등 시민들이 식당을 선택하는 정보가 다양해져 모범음식점의 효과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며 “정부가 맛집을 평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민간단체에서 창의적으로 맛집 평가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현실에 맞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모범음식점#맛#서비스#제도#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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