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환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57)이 18대 국회의원으로 재직할 때 부산 ‘해운대 엘시티’ 사업에 유리한 법안을 대표 발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23일 동아일보가 분석한 국회사무처 회의록에 따르면 현 전 수석은 2009년 5월 ‘주택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외자 유치를 촉진하기 위해 경제자유구역 및 관광특구 내 50층 이상(또는 150m 이상) 초고층 복합건축물에 대해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배제해 해당 지역을 활성화하자는 것이 법안의 핵심이다. 현 전 수석 등 의원 12명이 공동 발의한 해당 법안은 상임위를 거쳐 병합 심사된 끝에 대안으로 의결됐고, 2010년 3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안 통과 전 문제점이 지적됐지만 무시된 정황도 있었다. 2010년 2월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이 제출했던 법안 심사보고서에서는 분양가상한제 폐지가 공공택지를 저가로 공급받아 높은 분양가로 분양해 건설업체가 과도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타 지역 개발사업자들과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법안은 별다른 이견 없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부동산업계에서는 당시 주택법 개정안 통과로 침체됐던 부산·인천 일대의 초고층 건물 사업이 탄력을 받게 됐다고 입을 모은다. 부산지역 한 공인중개사는 “분양가상한제 폐지로 초고층 건물이 우후죽순 들어서던 해운대의 부동산 시장이 들썩거렸다”며 “하지만 건설사가 이익을 볼 수 있는 조치였을 뿐 소비자 입장에선 득이 될 게 없었다”고 말했다.
엘시티는 해당 법안뿐 아니라 착공 전 다수의 법적·행정적 도움을 받았다. 2008년 6월 주택건설기준 개정으로 관광특구 내 50층 이상 초고층 복합건물에 주거시설을 포함할 수 있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이어 2009년 12월에는 부산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중심미관지구를 일반미관지구로 변경해 사업 부지의 고도 제한 등이 풀린 것도 호재였다. 2010년 3월 이뤄진 분양가상한제 폐지로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통한 사업비 조달 및 해외업체의 시공 참여 등에 밑거름을 마련하게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엘시티 비리’ 사건을 수사 중인 부산지검 특별수사부(부장 임관혁)는 이날 현 전 수석의 비리 단서를 포착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조만간 그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할 방침이다.
엘시티 이영복 회장의 로비 자금 사용처를 추적 중인 검찰은 엘시티 시행사와 이 회장이 만든 페이퍼컴퍼니 등이 회삿돈으로 구매한 수십억 원 상당의 상품권 및 무기명선불(기프트) 카드 사용 내용을 확인했다. 검찰은 이 회장의 구속기한 만료일인 29일 전에 횡령 혐의에 반영할 금액을 확인하고, 용처를 보다 세밀하게 구분하기 위해 수사 인력을 최근 보강했다.
하지만 이 회장의 혐의에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회장이 여전히 로비 의혹에 대해선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검찰이 밝힌 만큼 현 전 수석을 상대로 한 수사가 어느 정도 성과를 내느냐에 따라 정관계 로비 수사의 포문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28일경 이 회장을 기소한 뒤 수사를 이어가면서 혐의가 더 확인되는 대로 추가 기소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윤대진 부산지검 2차장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수사가) 이제 막 첫걸음을 뗐다”고 신중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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