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사랑도 거짓말, 웃음도 거짓말…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1970년대를 풍미했던 김추자의 히트곡 ‘거짓말이야’의 노랫말입니다. 거짓말이란 단어가 가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 삶에 거짓말이 많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거짓말을 종종 경험하고, 때론 그것을 용인하기도 합니다. 애교 섞인 거짓말, 선의의 거짓말, 상대를 생각하는 ‘배려형 거짓말’ 등이 그렇습니다. 가끔은 흑심이 약간 섞인 거짓말을 하기도 합니다. 약속에 지각하곤 교통 체증을 ‘핑계 삼는 거짓말’, 곤란한 처지에서 ‘둘러대는 거짓말’ 등이 그렇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유연한 인간관계를 고려해서 모른 척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은 ‘작은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짓말이 용인될 가능성은 공동체의 크기에 반비례합니다. 학교, 직장, 지역공동체, 국가의 차원으로 갈수록 거짓말에 대한 ‘관용’은 영점에 가까워집니다. 한 사람의 거짓말이 공동체에 미치는 파장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곧 ‘큰 거짓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공인에 대해 거짓말의 잣대를 엄하게 적용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공인일수록 거짓말의 상징인 ‘피노키오의 코’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사적인 자리에서 거짓말할 때와 달리, 공적인 광장에서 거짓말을 하면 수많은 눈이 있어서 늘어난 코를 곧 들키게 되기 때문입니다.
카를로 콜로디의 ‘피노키오의 모험’은 단순히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교훈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피노키오 이야기는 거짓말의 핵심을 꿰뚫는 두 가지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거짓말은 ‘계속 자랄 수 있다’는 것과 그렇게 자라는 거짓말은 ‘도저히 감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푸른 머리의 요정은 피노키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거짓말에는 두 가지가 있단다. 하나는 다리가 짧아지는 거짓말이고, 다른 하나는 코가 길어지는 거짓말이란다.” 바로 탄로가 나서 멀리 가지 못하는 거짓말이 있고,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으면서 계속 자라는 거짓말이 있다는 것이지요. 큰 거짓말이라고 할지라도 곧 종결에 이르는 첫 번째보다 두 번째 거짓말이 심각한 것입니다. 계속 길어지는 코처럼 도저히 주체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에게나 듣는 사람에게나 모두 고통입니다. 새뮤얼 버틀러는 “나는 거짓말에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그 치밀하지 못함은 참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역설적인 표현입니다만, 계속 늘어지는 거짓말의 정곡을 찌르고 있습니다. 엄청나게 늘어난 피노키오의 코는 당연히 감출 수도 없습니다. 비극작가 소포클레스는 “거짓은 시간이 지나도 결코 늙는 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거짓은 사람들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받아 진실보다 오히려 더 젊음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진실과 거짓의 비극이기도 합니다.
진실은 쉽게 망각되지만 거짓은 계속 상기됩니다. 이는 40여 개의 다양한 일화로 구성된 콜로디의 동화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기억하는지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거짓말과 코의 일화는 딱 한 번 나오지만 사람들에겐 그것이 ‘피노키오의 이야기’입니다. 진실은 사건을 종결하지만, 거짓은 사건을 연명하게 합니다. 진실에 의해 해소되기 전까지 거짓말에 대한 원망은 노래의 후렴처럼 계속 되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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