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때 조선인 키 3cm이상 줄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5일 03시 00분


조영준 교수, 사할린기록물 등 통해 20~40세 남성 2100여명 키 분석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키가 점차 작아졌다는 연구가 나왔다.

 조영준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3일 한일민족문제학회가 연 학술대회 ‘사할린 한인기록물을 통해 본 일제하 재외한인사회’에서 일제강점기 사할린에 강제 징용된 노동자를 포함해 20∼40세 조선인 남성 2100여 명의 키를 출생 연도별로 분석했다.

 조 교수는 ‘사할린 화태청(樺太廳·1907∼1945년 남사할린을 관할한 일제의 관청) 소장 경찰 기록과 일제하 조선인 신장(身長) 추세’라는 제목의 발표문에서 1896∼1900년생 남성은 평균 키가 162.8cm였지만 1921∼1924년생은 평균 159.5cm로 3cm 이상 작아졌다고 밝혔다.

 이 연구에 따르면 1900년대, 1910년대생도 각각 그 이전 출생자보다 키가 작아 신장이 계속 작아진 걸로 나타났다. 신장은 성장기의 영양 상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들이 청소년기인 1910, 1920년대 영양 상태가 각각 전보다 나빴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사할린 거주 조선인은 노무자로 끌려간 이가 대부분으로, 키가 조선에서 다 자라고 성인이 된 뒤 사할린으로 갔기 때문에 이들의 신장은 사할린이 아니라 조선에서의 영양 상태를 보여준다.

 이번 연구에서 분석한 조선인은 노무자(632명), 갱내 탄광노동자(459명), 기능공(107명), 상인(49명), 농민(40명) 등으로 당시 조선인의 다수를 구성했을 하층민을 포함하고 있다.

 조 교수는 이번 대회에서 사할린 거주 일본인 남성 270명을 분석한 결과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일본인은 △원래 신장이 조선인보다 작았고 △조선인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키가 작아졌지만 △작아지는 정도는 조선인보다 완만해 점차 키가 조선인과 비슷해졌다.

 이번 연구는 최신 자료인 2014년 대일항쟁기위원회가 러시아 국립사할린주역사기록보존소에서 열람한 문서철과 2006년 발간된 ‘전전(戰前) 조선인 관계 경찰자료집―화태청 경찰부문서’ 자료를 종합해 분석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평균키를 볼 수 있는 당시 국내 자료는 매우 드물다. 국내 관보(官報)의 행려사망자 기록을 분석한 연구가 있지만 원자료가 눈대중으로 기록됐을 가능성이 높아 신뢰도에 한계가 있다. 서울 양정고보 학생들의 기록을 조사해 “같은 연령대에서 신장이 점점 커졌다”는 연구가 있지만, 이들은 청소년인데다 조선인 가운데 상류층에 속해 대표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연구는 ‘조선인 관계 서류철’ ‘행정수사 서류철’ ‘조선인 관계 소재불명 요시찰인 수배에 관한 서류철’ 등 수배, 감시 목적의 일경(日警) 자료를 분석해 신뢰도가 높다. 키를 척(尺) 촌(寸)뿐 아니라 푼(分)까지 기재한 문서도 다수고, 일부는 미터법으로 mm 단위까지 기재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했지만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생산이 증가해 1910∼1940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연평균 증가율이 2.3%가량에 달했다는 게 수량경제학의 연구 결과다. 그러나 성장의 과실이 조선인에게도 분배돼 생활수준이 향상됐는지에 관해서는 학자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조 교수는 “이번 연구는 일제강점기 경제성장으로 조선인의 생활수준이 향상했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일제시대#조선인#키#성장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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