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서 암투병 치료 윤효중씨 ‘문화가 있는 수요일’ 마무리 출연
“내년엔 모두 희망 품고 살았으면”… 음악감상실서 LP레코드-CD 틀어
지난달 30일 인천아트플랫폼 A동 ‘칠통마당’에서 시민 개방 음악감상실 진행자인 DJ 윤효중 씨가 올해 마지막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인천문화재단 제공
지난달 30일 오후 6시 인천 중구 인천아트플랫폼 A동 생활문화센터 ‘칠통마당’. 인천 1호 DJ 윤효중 씨(66)가 검은 중절모와 노란색 머플러, 회색 바바리코트를 걸치고 가설 ‘DJ 박스’에 힘겹게 들어섰다.
윤 씨는 모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암 치료차 입원 중이지만 병원 측의 만류를 뿌리치고 이날 조건부 외출에 나섰다. 인천문화재단의 의뢰로 8월부터 진행 중인 ‘문화가 있는 수요일’ 음악 감상 프로그램의 마무리를 위해서다. 담당 의사는 그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하는 수 없이 ‘2시간의 외출’을 허용했다. 인천문화재단 책임자가 병원을 나갔다가 다시 올 때까지 윤 씨와 동행하며 건강 상태를 지켜보는 조건이었다.
그는 며칠째 음식을 먹지 못한 채 링거를 맞고 있는 중이라 무척 수척해 보였다. 그래도 실내 1층 칠통마당에 임시로 마련된 음악감상실 턴테이블 앞에서 LP 레코드와 CD를 고르는 손길은 무척 빨라 보였다.
첫 곡으로 “세상이 이랬으면 좋겠다”는 멘트를 곁들여 루이 암스트롱의 ‘왓 어 원더풀 월드(What a wonderful world)’를 선곡했다. 이어 포르투갈 전통음악 파두로 유명한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의 ‘검은 돛배’, 프랑스 샹송가수 나나 무스쿠리의 ‘사랑의 기쁨’ 등 감성적인 옛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는 ‘님은 먼 곳에’ ‘예스터데이’ 등 1960, 70년대 인기를 얻었던 주옥같은 국내외 노래를 정성껏 골라 들려줬다.
한 관객이 꽃다발을 전하며 눈물을 글썽이자 그는 자신의 건강 상태를 담담히 말했다. “살다 보니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경우가 있네요. 8월에 이 프로그램을 맡고 한 달 뒤 암 진단을 받았어요. 병원에 입원해 호전되는가 싶더니 3일 전부터 금식하고 물로 연명합니다. 그런데도 마이크를 잡고 음악을 들으니 용기가 납니다.”
윤 씨는 “인천 인구가 50만 명일 때 인천 최초의 DJ로 시작해 300만 명 시대를 맞게 됐다”며 음악인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전해줬다. “비틀스를 이끈 폴 매카트니와 30대에 요절한 가수 김정호의 공통점이 뭔지 아십니까. 악보를 볼 줄 모르는데도 멋진 곡을 작곡했습니다. 머리에 떠오르는 곡을 피아노와 기타로 쳐서 녹음해 오면 편곡자가 완성해 주었지요.”
마지막 곡은 사이먼&가펑클의 ‘브리지 오버 트러블드 워터(Bridge over troubled water)’였다. 그는 “아름다운 이 노랫말처럼 내년엔 모두 희망을 품고 살길 바란다. ‘해피 뉴이어’, 새해 인사를 미리 드린다”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40여 명의 관객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하고 포옹하며 감사 인사를 나눴다. 여러 장의 기념사진도 찍었다. 관객들은 그에게 내년에도 프로그램을 계속해 달라고 부탁했다.
윤 씨는 1967년 고교 3학년 겨울방학 때부터 경인전철 동인천역(당시 미개통) 앞의 유명 제과점 건물 5층에 문을 연 ‘별음악감상실’의 초대 DJ였다. 서울 명동의 세시봉처럼 젊은이들의 명소였다. 그는 “통금이 있던 시절이라 별음악감상실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11시 반까지 운영됐다. 자장면 값이 20원이었을 때 40원의 입장료를 내고 음악감상실을 찾던 사람들이 하루 1500명까지 달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군에 입대한 1971년까지 인천지역 인기 DJ로 활동했다.
그는 아직도 중구 신포동에서 DJ 박스를 갖춘 음악감상 카페를 10년 가까이 운영하고 있다. 송창식 윤형주 이동원 같은 동년배 가수들과도 두터운 교분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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