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이권효]대구시의 이유 있는 ‘대통령 짜증’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7일 03시 00분


“청와대와 대통령의 부적절한 태도로 대구가 욕을 먹어 짜증납니다.”

 대구시청 직원들 사이에 박근혜 대통령을 짜증스럽게 여기는 분위기가 높아지고 있다. 국정 농단 사태와 관련해 대구시 직원들은 말을 아끼는 편이었다. 그런데 1일 대통령이 화재가 난 서문시장에 불쑥 나타났다가 10여 분 만에 가버린 뒤 대구시가 영접에 소홀했다는 오해가 나오자 사정이 아주 달라졌다. “기가 막히고 어이없다”고들 한다.

 권영진 대구시장과 윤순영 중구청장은 대통령의 방문을 곁에서 수행하지 못했다. 사정을 모르는 일부 누리꾼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대구시와 시장에게 욕설을 퍼붓고 있다. 대구시는 6일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과 전혀 다른 내용이어서 억울하겠지만 이런 사안은 법적 대응보다는 시급한 서문시장 사고 수습을 비롯해 대구시의 현안에 집중하는 모습이 바람직하다.

 대통령의 서문시장 방문과 이후 상황에 대해 대구시청 직원들은 “저런 사람을 대통령이 되도록 대구가 앞장섰나” 하는 서글픈 자괴감을 보인다. 한 직원은 “방문 과정에서 청와대와 대통령이 보여준 행태가 너무나 뒤죽박죽 무능하다는 생각이 스쳤다”고 말했다.

 청와대 비서관은 대통령 방문 하루 전에 대구시에 일정을 알리면서 준비를 요청했지만 방문 당일 아침에 “갑자기 취소됐다”고 연락했다. 그런 다음 서문시장 상인연합회장에게 전화를 해서 ‘개인 자격’으로 방문한다고 알렸다. 대구시장과 중구청장은 상인연합회장을 통해 방문 사실을 알고 서문시장 대책본부에서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대통령은 아무도 만나지 않고 가버렸다. 청와대 담당 비서관은 대구시 간부에게 “일이 이렇게 돼서 죄송하다”는 사과 문자를 보내왔다.

 대구시는 대통령의 이 같은 행태를 상당히 불쾌하게 여긴다. 한 직원은 “대통령이 대형 화재가 발생한 현장에 대낮에 공개적으로 오면서 지자체를 속이고 개인 자격 운운하는 게 말이 되느냐. 이렇게 공사(公私) 구분을 못하니 지금과 같은 사태도 생긴 게 아닌가”라고 했다. 다른 직원은 “대구를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라고 하는 말도 창피하고 듣기 싫다”고 했다.
 
이권효·대구경북취재본부장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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