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정부 보조금으로 농기계 구입한 농민이 사기혐의로 입건된 이유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11일 23시 30분


볏짚을 압축하고 묶는 농기계를 베일러라고 한다. 매일 대량의 사료를 쓰는 축산농가에는 없어서는 안 될 농기계다. 전남에서 소를 키우는 농민 조모 씨(63)는 2011년 사료 값을 아끼기 위해 베일러를 구입하기로 했다. 베일러의 대당 가격은 약 1억5000만 원. 조 씨는 정부 보조금 50%를 받아 농기계를 구입했다. 자부담 7500만 원은 농기계 업체 사장을 통해 마련했다. 조 씨는 "업체 사장이 자부담 몫을 빌려 주겠다고 제안해 구입했다"며 "2년에 걸쳐 빌렸던 7500만 원을 모두 갚았다"고 밝혔다.

그런데 3년 뒤 조 씨는 졸지에 사기범이 됐다. 사정은 이렇다. 광주지방경찰청은 지난해 봄 조 씨 등 농민 약 40명을 사기 혐의로 입건했다. 이들은 2010년부터 2013년까지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원하는 보조금으로 트랙터와 베일러 등 각종 농기계를 구입하면서 자부담금 1335만~7500만 원을 마련하지 않고 업체 사장 공모 씨의 '대납'을 통해 보조금을 받아낸 혐의다.

경찰에 따르면 농기계 구입을 위해 보조금을 받으려는 농민은 50~70%의 자부담금을 먼저 납부해야 한다. 농민들은 공 씨로부터 돈을 빌려서 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자를 지급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일부는 차용증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공 씨는 농기계 판매로 수익을 올리고 대신 농민들은 이자를 내지 않는 혜택을 본 것이다.

광주지검은 올 1월 조 씨 등 34명을 벌금형으로 약식 기소했다. 조 씨 등 19명은 이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최근 열린 재판에서 광주지법 형사11단독 염호준 판사는 농민 19명에게 벌금 100만~1000만 원을 각각 선고했다고 11일 밝혔다. 염 판사는 판결문에서 "농림수산사업 자금집행관리 기본규정은 허위 지원을 막기 위해 농민이 자부담금을 먼저 내도록 하고 있다"며 "조 씨 등이 자부담금을 먼저 낸 것처럼 꾸며 보조금을 지급받은 것은 기망행위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농민들은 "업체에서 시킨 대로 했다가 평생 처음 형사처벌을 받게 됐다"면서 "죄가 되는 줄 알았다면 사채라도 빌려서 냈을 것"이라며 억울해하고 있다. 일부 농민은 법원 판결 후 항소했다. 전남도 관계자는 "농민들이 돈을 빌리고 이자를 지급하지 않았는데 사법기관이 이 부분을 부당한 이익으로 본 것 같다"며 "농민들이 애꿎은 피해를 입지 않도록 정부에 제도 개선을 건의했다"고 말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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