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범인입니다”…같은 동호회원에 엽총 쏜 40대女, 이유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12일 17시 27분


"사람에게 총을 쐈습니다."

11일 오후 1시 반경 112 접수내용을 확인한 경찰이 신고 장소로 출동했다. 서울 중랑구 묵동 주택가에 한 30대 여성이 허벅지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옆에 서있던 40대 여성이 경찰을 보자 말했다. "제가 범인입니다."

근처에는 범행에 쓰인 엽총이 있었다. 난데없이 발생한 주택가 총격에 주민들은 불안에 떨었다. 경찰에 따르면 피의자 유모 씨(46·여)와 피해자 조모 씨(39·여)는 같은 등산동호회원이다. 올 5월 유 씨는 동호회에서 갑자기 제명됐다. 사소한 오해와 갈등이 원인이었다. 유 씨는 조 씨 탓에 제명됐다는 생각에 앙심을 품고 복수를 계획했다. 칼과 망치 대신 거리가 떨어져 있어도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있는 엽총을 택했다.

정신질환이나 전과가 없는 보통 사람은 엽총을 갖는 것이 어렵지 않다. 수렵용 엽총을 구매해 총포소지허가를 받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약 23일. 수렵면허 필기시험 응시 및 합격(약 10~15일), 1종 수렵면허 취득을 위한 강습 5시간, 신체검사 1일, 면허 발급기간 5일, 경찰서 총포안전교육 1시간 등이다. 유 씨는 9월 중 모든 절차를 거친 뒤 150만 원짜리 중고 엽총과 총탄 10발을 구입해 경찰서에 보관했다. 그리고 수렵장이 개장하는 겨울을 기다렸다.

유 씨는 11일 오전 7시경 서울 양천경찰서 신정2지구대에서 수렵허가증을 제시하고 "충남 공주시로 사냥을 하러 간다"고 밝히고 총을 받았다. 앞서 10월 18일에는 수렵가능기간에 총기를 찾을 수 있는 '보관해제신청서'도 미리 제출했다. 경찰 관계자는 "지구대에선 보관 업무만 담당한다. 엽총을 내어줄 때 구체적으로 수렵 목적이나 장소를 묻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 씨의 무모한 복수극을 막을 마지막 장치는 무용지물이었다. 경찰이 보관 중인 엽총은 방아쇠에 '트리거락'이란 잠금장치가 걸려 있다. 수렵장 관리직원이 잠금 장치를 풀어야 한다. 2015년 한 해 동안 엽총사건으로 6명이 숨지자 경찰이 세운 대책이다. 하지만 유 씨처럼 힘이 약한 여성도 절단기를 이용하면 손쉽게 제거할 수 있다. 그리고 유 씨는 하얀 보자기에 엽총을 싸서 조 씨의 집으로 향했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총기를 반출할 때 당사자의 대인관계, 채무관계, 사회적 성향 등을 물어봐야 한다"며 "프라이버시에 민감한 미국에서도 경찰이 이런 절차를 거친다. 이제 한국에서도 총기 안전을 고려한 대안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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