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악의 피해가 우려되고 있는 가운데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를 막기 위해 정부가 전국적인 ‘일시 이동중지명령’을 발동했다. 이번 AI 발생 이후 두 번째 전국 규모의 명령이다. 하지만 현장의 방역 인력이 많이 모자라는 데다 일부 지역에선 제대로 된 약품 관리마저 이뤄지지 않고 있어 정부 대책의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12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주재로 관계 장관회의를 열고 범정부적인 AI 대응체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날 밤 12시부터 14일 밤 12시까지 전국의 닭·오리 관련 차량과 물품, 관련 산업 종사자를 대상으로 일시 이동중지명령을 내렸다. 이 명령이 내려지면 축산농장이나 관련 작업장에 외부인이 출입할 수 없다. 이를 위반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정부가 뒤늦게 대책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정부 대책에 구멍이 많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전국에서 AI가 발생하고 있지만 농식품부는 여전히 AI 위기경보를 ‘심각’(여러 곳에서 발생, 전국 확산 우려)보다 한 단계 낮은 ‘경계’(인접 또는 타 지역 전파)로 유지하고 있다. 중앙에서 지휘하는 ‘머리’만 클 뿐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방역을 담당하는 ‘손발’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농식품부와 산하 농림축산검역본부에는 수의사 자격증을 가진 공무원이 300여 명이나 포진해 있다. 반면 전국 228개 지방자치단체의 수의직 공무원은 270명 안팎이다. 1곳당 1, 2명에 불과한 셈이다. 특히 강원(11개)과 경북(6개) 등 25곳의 기초지자체에는 수의직 공무원이 아예 없다.
현장 인력 부족으로 소독약 점검 등 기초적인 방역 업무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올 10월 전국 닭·오리 농가에서 사용 중인 소독약 중 27가지가 이번 AI에는 효력이 없다. 하지만 이런 정보가 농가에 통보되지 않아 여전히 해당 소독약에만 의존하는 곳이 적잖다. 충북 음성에서 오리 농장을 운영하는 정모 씨는 “지자체에서 특정 약품을 쓰지 말라거나 회수하겠다는 통보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산란계(알 낳는 닭) 농장에 피해가 집중되면서 계란 가격 상승세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경기도 방역당국은 9일 밤 12시부터 산란계 농가가 일주일에 한 번만 계란을 출하하게 하는 제한조치를 내렸다. AI 발생 농가가 많은 충남 천안시와 아산시에서는 1인당 60개까지만 계란을 살 수 있도록 제한하는 대형마트도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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