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한달 3만원” 헬스클럽의 불편한 진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17일 03시 00분


 
‘몸짱’을 꿈꾸며 헬스장에서 땀 흘리고 있는 사람들. 동아일보DB
‘몸짱’을 꿈꾸며 헬스장에서 땀 흘리고 있는 사람들. 동아일보DB
거리에서 숱하게 받는 전단. 둘에 하나는 헬스장 광고물이다. 눈길을 확 끄는 ‘몸짱’ 사진에, ‘50% 할인’ ‘특별가 제공’ ‘월 2만9000원’ 등 가입을 유혹하는 문구가 가득하다.

 자신의 몸을 돌아본다. 늘어난 뱃살, 몇 계단만 올라도 헐떡이는 숨, TV 신문 잡지 인터넷엔 온통 몸짱 사진인데….

  ‘운동을 하긴 해야 하는데….’

 오가며 얼핏 봤던 헬스장을 찾는다. “저 한번 둘러보러 왔는데요.”

 친절하게 맞는 직원들. 각종 건강과 운동 관련 상식을 알려주는 것은 물론이고 종합검진 때나 받던 인바디(InBody·체성분 분석기) 측정도 해준다. “체지방 비율이 너무 높으세요. 복근운동만으로는 절대로 뱃살을 뺄 수 없어요. 회원권을 끊으면 3회 무료 PT(Personal Training·개인레슨)도 해드립니다.”

 조금씩 끌려 들어가는 나. 일단 한 달 회원권을 끊고, 너무나 친절한 트레이너의 무료 개인레슨을 받고 있자니 온몸이 결리지만 몇 개월 후에는 진짜 식스팩을 가진 ‘어깨깡패’가 될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이 ‘확’ 든다.


● 비싸게 요금 부른 뒤 깎아주는 척 ‘사기성 마케팅’


 
몸짱 열풍과 함께 몸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도심이나 주요 지하철역 주변 등 인구 밀집 지역에는 두세 건물 건너 하나씩 있을 정도로
 헬스클럽이 늘고 있다. 헬스클럽들은 각종 이벤트 행사와 함께 파격적인 가격 할인을 제시하며 손님을 유혹하지만, 일부 헬스클럽들은
 가입비만 받고 폐관하거나 환불 금액도 자의적으로 적용하는 등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동아일보DB
몸짱 열풍과 함께 몸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도심이나 주요 지하철역 주변 등 인구 밀집 지역에는 두세 건물 건너 하나씩 있을 정도로 헬스클럽이 늘고 있다. 헬스클럽들은 각종 이벤트 행사와 함께 파격적인 가격 할인을 제시하며 손님을 유혹하지만, 일부 헬스클럽들은 가입비만 받고 폐관하거나 환불 금액도 자의적으로 적용하는 등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동아일보DB
“회원님, 함께 운동해요.”

 미소가 가득한 트레이너의 권유에 정말 큰마음을 먹고 PT(Personal Training·개인 레슨)도 끊었다. ‘자, 가자! 몸짱의 세계로!’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좀 이상하다. 트레이너와는 서로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 PT를 한 번 받고 나면 1, 2주는 건너뛰기 일쑤다. PT 횟수가 절반을 채워 가니 담당 트레이너는 PT를 더 끊지 않겠느냐고 자꾸 졸라댄다. 딱 잘라 거절하는 성격이 아니라 이런저런 핑계를 대다가 결국 “더 연장할 생각이 없다”고 하자 서로 보는 게 어색해졌다.

 일단 전제를 하자. 이 글은 운동의 효과나 헬스클럽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자주 하면 더 좋겠지만 띄엄띄엄이라도 운동을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더욱이 트레이너에게 배운다면 보다 효율적으로 몸을 만들 수 있다. 문제는 몰라서, 또는 우유부단해서 알게 모르게 헬스장 상술에 이용당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 조금만 더 따져보고, 세밀히 살피면 훨씬 싼 가격에 더 효율적으로 운동을 할 수 있다.

‘월 3만 원’의 함정


 각종 전단지와 입간판 등을 통해 회원권이 ‘월 3만 원’이라고 선전하는 서울 강남의 한 피트니스클럽. 하지만 ‘월 3만 원’은 1년 회원권(36만 원)을 끊을 경우 환산해서 나온 금액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 피트니스클럽에서 한 달만 회원권을 끊으려면 10만 원을 줘야 한다. 6개월은 30만 원. 그래서 처음부터 장기 회원권을 끊는 사람들이 많다. 비싸게 부른 뒤, 많이 깎아주는 것처럼 보여서 사게 만드는 마케팅 전략인 셈이다. 물론 이해는 안 가지만 매달 10만 원씩 내고 다니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이곳에서 근무했던 전직 트레이너 A 씨는 “헬스장을 찾을 때 일단 한두 달만 생각하고 오는 사람은 별로 없다”며 “이런 사람들에게 한 달은 10만 원, 반년은 30만 원이라고 하면 대개 반년 치를 끊는다”고 말했다. A 씨는 “사실 월 10만 원이라는 게 근거도 별로 없는 가격”이라며 “깎아주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미리 올려놓은 가격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헬스장 회원권은 소비자가 얼마나 깐깐하게 구느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A 씨는 “주로 대형 헬스장에서 많이 그러지만 처음부터 가장 싼 회원권이 얼마라고 알려주는 곳은 없다”며 “가장 비싼 가격을 불렀다가 손님이 주저하거나 더 꼼꼼히 따지면 각종 행사, 트레이너 재량권을 핑계로 낮춰 주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10여 개의 체인점을 가진 이 피트니스클럽도 지점이 위치한 동네에 따라 30만 원대 중반에서 50만 원대 초반까지 연 회원권 가격이 다르다.

 헬스장의 할인 이벤트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 트레이너나 헬스장 차원에서 만들기 나름이다. 그래서 사실상 할인이 없는 달이 거의 없다. 봄·가을맞이. 졸업·입학 기념, 새 단장(리뉴얼) 기념은 기본. 3∼5월에는 여름 준비, 6월에는 휴가 준비, 9월에는 추석맞이 등 갖가지다. 하다못해 ‘헬스+사우나 2만9000원’ 행사도 있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우나가 없는 헬스장은 드물다.

PT, PT, PT


 회원권은 큰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헬스장에서는 어떻게든 PT를 권유한다. 처음 등록 시 ‘3회 무료 PT’를 제공하는 것도 서비스가 아니라 PT를 끊게 만들기 위한 미끼다.

 PT 가격도 회원권과 마찬가지로 몇 회를 등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서울 서초구 B헬스센터는 회당(50분) 가격은 11만 원이지만, 60회는 300만 원을 받는다(부가가치세는 별도). 산술적으로는 660만 원이지만 많이 끊을수록 할인 폭이 커진다는 설명과 함께 원래 있었는지 확인도 안 되는 각종 할인 이벤트를 포함해 준다. 여기에 트레이너 재량으로 몇 퍼센트 할인을 더 해주고, 마지막으로 특별 서비스로 무료 4회를 더 해준다는 식으로 등록을 권유한다.

 회당 11만 원도 공식 가격이라기보다는 할인을 위해 애초에 높게 책정한 가격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가격에 등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50회, 30회, 10회 등 횟수는 정하기 나름이지만, 대부분의 트레이너들은 30회, 10회권이 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회원권처럼 일단 세게 부르고 난색을 표하면 하나씩 아래 단계로 내려간다.

 무료 PT를 시작하기 전에 ‘인바디’로 체성분을 측정해 준다. 거의 모든 사람이 비만, 복부비만 또는 근육량 부족으로 나오기 마련. 트레이너들은 이 불균형이 심한 수치들을 보여주며 무료 PT를 시작한다.

 B헬스센터의 김모 트레이너는 “트레이너가 옆에서 정확한 자세를 잡아주며 근육의 한계지점까지 운동을 시키면 바로 다음 날 엄청나게 근육통이 오면서 제대로 운동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며 “여기에 추가로 무료 수업을 몇 번 더 해주겠다고 제안하면 조금 비싸도 운동을 제대로 하는 것처럼 여겨 등록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B헬스센터 트레이너들은 150회 이상의 PT를 끊을 경우 10%의 인센티브를 받고, PT 1회당 1만 원의 트레이닝비를 받는다. ‘기본급+인센티브+트레이닝비’가 월수입이 되는 것.

 김 트레이너는 “내 경우 보통 한 달에 트레이닝비로 200만 원 안팎을 받는다”며 “기본급은 적은 대신 트레이닝비는 노력하는 만큼 올라가기 때문에 대부분의 트레이너들이 PT에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부 대형 피트니스클럽에서는 트레이너들에게 매달 목표액을 정해 주고 못 채우면 연대 책임을 지우기도 한다. 올해 트레이너를 그만둔 강모 씨(25)는 “내가 일한 C클럽의 경우 체인까지 있는 대형 헬스센터지만 트레이너가 월 목표량을 못 채우면 동료들이 n분의 1씩 걷어서 할당량을 채우게 했다”며 “동료들이 낸 돈은 해당 트레이너가 나중에 자기 돈으로 갚았다”고 말했다. 

 이런 사정 때문에 형편에 여유가 있고, 마음이 약한 회원의 경우 장기 PT 구매의 집중 표적이 되기도 한다. 목표량을 채우기 어려울 때 이런 회원에게 간절하게 부탁하는 것. 강 씨는 “믿기 어렵겠지만 회원 중에는 PT 횟수를 다 쓰지도 않았는데 더 끊어달라는 트레이너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PT가 100회가 넘게 쌓인 경우도 있다”며 “일종의 봉인 셈”이라고 말했다.

운동이 안 돼∼


 트레이너들이 PT 채우기에 급급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회원들이다.

 비싼 돈을 내며 PT를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제대로 운동을 하기 위해서다. 그러려면 PT 간격이 일정 기간을 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트레이너들이 무작정 신규 PT 회원을 늘리다 보니 물리적으로 기존 회원을 교육할 시간은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 직장인들이 많은 서울 시내 헬스장에서 근무하는 이모 씨(34)는 “회원 대부분 퇴근 이후를 선호하지만 가르칠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4시간 정도뿐”이라며 “재등록을 계속하는 우수 회원들을 먼저 배정하고 나면 일주일은 고사하고 열흘씩 시간을 못 잡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이 씨는 “중간에 PT 없이 혼자 운동을 하기도 하지만 간격이 10일씩 벌어지면 솔직히 PT를 받는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며 “한번은 2주 이상 PT를 못 받은 회원이 강하게 항의하는 바람에 싸움이 나 경찰까지 출동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헬스장 입구 등에 명기한 트레이너들의 각종 자격증도 가짜인 경우가 많다.

 서울 강남의 D헬스장에서 근무하는 양모 씨(32)는 “헬스장 입구에 생활체육지도자, 스포츠마사지 자격증이 있다고 프로필을 적어놨지만 실제로 갖고 있지 않다”며 “아무도 확인하지 않기 때문에 센터에서 그냥 그렇게 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양 씨는 “솔직히 스포츠마사지 자격증이라는 게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D헬스장에서는 무자격자가 무리하게 마사지를 해주다가 회원의 갈비뼈에 금이 가게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양 씨는 “내 경우 처음 취직해서 한두 달 정도 헬스장 내에서 각종 기구 사용법이나 트레이닝법을 처음 교육받았다”며 “회원들은 전문가도 아니고, 어쨌든 무거운 기구를 많이 들게 하면 몸이 결리고 근육이 생기는 등 운동은 되기 때문에 트레이너가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지 잘 모른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몸이 비틀어지거나 골반이 틀어진 사람의 경우 오히려 몸을 더 망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고 한다. 

 PT 재등록을 위해 막바지 2, 3주에는 일부러 약간 살이 찌도록 만드는 트레이너도 있다고 한다. 양 씨는 “식단에 탄수화물과 고기를 좀 늘리고, PT를 한두 번 건너뛰면 2kg 정도는 금방 늘릴 수 있다”며 “PT를 오래 한 회원, 특히 젊은 여성일수록 몸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기 때문에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명절 연휴가 끝난 다음 날이나, 월요일에 헬스장이 붐비는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회원은 자신이 살이 찐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트레이너의 장난을 알아챌 정도로 평소 식단이나 몸 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대개 ‘이번 주에 운동을 덜 해서’ ‘며칠 많이 먹었더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양 씨는 “헬스장으로서는 장사가 첫 번째이기 때문에 내막을 잘 모르는 회원들은 ‘봉’이 되기 쉽다”며 “개인레슨 간격이 자주 일주일 이상 벌어진다면 트레이너 교체를 요구하는 등 자신의 권리를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헬스#트레이너#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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