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의 바람이 뜨겁다. 대학가 역시 모든 수업에 혁신, 융합, 창의 등이 강조되며 발 빠르게 대응하는 추세이다.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며 묵은 것을 벗겨내고 느린 것을 쳐내느라 여념이 없다. 여기저기서 나부끼는 현수막은 혁신적 아이디어로 성공했다는 벤처 신화 주역들의 특강을 알리고 계단과 기둥 곳곳에는 젊은이들이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모아 대결해 보자는 공모전 포스터가 붙여진다. 가히 창의성 짜내기 강박증에 걸릴 판이다.
변화에 민감하여 세련된 사람은 참 매력적이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놀라움을 선사하는 사람 또한 그러하다. 요즘 같은 세상엔 이러한 이들은 매력을 넘어서 부러움의 대상이자 롤모델이다.
하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구나 그러할 수는 없는 법이다. 아니, 누구나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해야 더 어울리겠다. 새로운 생각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엔 한결같은 생각으로 임해야 하는 일이 있고 새로운 길을 찾기보다는 지나온 길을 되돌아봐야 하는 일도 있기 마련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도전에는 깊은 사고와 아이디어에 대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변화하고 혁신하고 창조하라고 채근하기 전에 그들의 몸과 마음은 어떠한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4차 혁명으로 모든 것이 혁신된다는데 뉴스 속 세상은 변한 게 없고 능력 위주의 사회가 되었다는데 부의 세습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이론과 현실의 이 괴리감을 그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몸과 마음의 쉴 곳 없이 아르바이트 현장으로 내몰리며 창의와 혁신이라는 명목 아래 수업마다 아이디어를 쥐어 짜내야 하는 그들의 젊음이 안타깝다. 도서관 고시원, 심지어 카페에서 공부할 자리마저 그들에게 충분하지 않다. 본격적인 4차 혁명이 시작되기도 전에 학생도 교수도 지쳐가고 있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지쳐가는 몸과 마음에서 즐거운 상상이 나올 수 있을까. 지금 대학가는 몸과 마음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절실히 필요하다. 오늘 한 학생이 과제로 발표한 참고 영상이 가히 충격적이다. 세련된 묘기를 보이는 코끼리 한 마리를 키워 내기 위해 조련사는 훈련 내내 날카로운 꼬챙이로 피가 나도록 코끼리 몸을 긁어댄다. 이 조련사가 교실에 서 있는 나처럼 느껴지는 슬픈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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